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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중년의 여성이 펑펑 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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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 영화관, 100석이 채 안되는 조그만 상영관에서 막 영화가 끝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졌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위해 들어왔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의 뻘쭘함이 상영관을 감싸고 있던 그 순간, 객석에서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감독과 배우들을 향해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상영 내내 눈물을 참은 듯한 일부 관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감독과 배우들도 이내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 배우는 끝내 고개를 떨궜다. 그 날, 그 영화관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 영화 1000만 관객 시대, 스타 캐스팅을 비롯해 탄탄한 제작환경과 대규모 제작비 등이 흥행을 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낯선 얼굴의 신인 배우와 열악한 제작환경, 반토막도 안되는 제작비로 대형 영화에 못지 않은 큰 힘을 발휘하는 영화도 있다. 바로 '독립영화'다. 사실 독립영화 관객수는 1000만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다. 일반 상업영화에 비해 상영관 수도 적을 뿐더러 상영기간 역시 짧아 관객몰이가 쉽지 않다. '평균'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상황에 따라 100단위 혹은 1000단위의 관객을 부른다. 운이 좋으면 1만명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이는 독립영화 바닥에선 '대박'에 가까운 수치니 독립영화 종사자 사이에서는 '꿈의 관객수'로 불리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파수꾼' 중 한 장면

이 날 상영된 영화는 '파수꾼 (감독 윤성현)' 이었다. 지난달 3일에 개봉해 한 달동안 1만 3000여 명이 관람했다. 그렇다. '대박'이다. 29세의 젊은 감독이 남학생들의 성장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다뤄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전국을 다 합쳐도 상영관은 20개 뿐이다. 대부분은 서울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지방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아예 '날 잡고' 상경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 먼 곳까지, 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이 영화를 보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명의 10대 남학생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친구이면서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 남의 상처를 더욱 할퀴어댄다. 속마음과는 다른 투박한 표현력이 가져오는 오해와 시기 속에서 이들은 어긋나기 시작하고 결국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줄거리만 본다면 다소 진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줄거리가 아니다. 바로 그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다. 한 관객이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 그들처럼 나도 내 상처를 감추기 위해 도리어 주위 사람을 더 괴롭히지는 않았나 생각해봤다. 나 역시 무의식 중에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주변의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감독은 "단순한 성장영화가 아니라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각 영화에는 관객에게 전하고픈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유독 독립영화가 뛰어난 전달력과 함께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상업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미세하고 섬세한 인간의 모습을 포장없이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독립영화에 관객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 날, 그 영화관, 감독과 배우들을 향해 눈물을 흘렸던 중년의 여성. 그녀가 울어버린 이유는 자식뻘 되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흐르는 세월에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모습을 건드려준 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시는 아니였을까.

유혜은 기자 yhe11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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