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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로펌 중 많으면 7곳 외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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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6대 로펌’으로 통하는 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는 요즘 비상이다.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국회를 통과하면 잠정발효일인 7월 1일부터 EU 국가에 있는 로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영국 현지 법인을 통한 미국계 로펌의 국내 진입을 감안하면 사실상 법률시장 전면 개방이다. 딱 96일 남았다.

2010년판 한국변호사백서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법무법인 및 공동법률사무소의 수는 630곳, 소속 변호사는 5893명이다. 이들 중 인원수가 30명 이상인 기업형 로펌은 22곳에 불과하다.

영·미계 대형 로펌은 세계 법률시장을 주무르는 ‘큰손’이다. 국내에서 적극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링클레이터스의 변호사 수는 2167명, 앨런앤오버리가 1969명에 이른다. 이들 영·미계 거대 로펌은 연간 매출이 20억 달러(약 2조2257억원)가 넘는 경우도 많다. 로펌 한 곳의 매출액이 국내 전체 법률시장 규모(연 2조원 추산)보다 많은 것이다.

아직 법률시장 개방까지는 3개월 남짓 남았지만, 외국계 로펌들은 ‘인재 빼가기’에 돌입했다. 2002년부터 김앤장에서 프랑스 법률자문을 맡았던 필립 리 프랑스 변호사는 지난달 중순 미국 로펌 존스데이(Jones Day)로 자리를 옮겼다. 화우에서 금융 파트를 맡았던 조한진 미국 변호사도 1월 말 미국계 베이커앤맥킨지(Baker & McKenzie)로 옮겼다.

영국계 로펌인 앨런앤오버리(Allen & Overy)는 아예 홈페이지를 통해 파생상품·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의 분야에서 한국시장을 담당할 경력 변호사를 모집하고 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한국어가 유창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한국계 변호사를 뽑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국 로펌의 주 고객은 국내 대기업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로펌 간 경쟁으로 인해 법률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외국 지사와 연계된 다국적 법률자문, 진출하려는 국가에 대한 포괄적인 리서치 등 새로운 법률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부정적인 영향도 예상된다. 법률 서비스의 가격이 어느 정도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은 시장을 석권한 영·미계 로펌이 높은 수임료를 엄격히 시간 단위(time charge)로 징수해 법률 서비스의 가격이 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경제법) 교수는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시장 개방 전 500여 개의 로펌에서 5만 명이 넘는 변호사가 활동하던 독일은 98년 개방 이후 몇 년 만에 영·미계 로펌에 시장을 잠식당했다.

국내 법률시장의 기반이 도미노처럼 붕괴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한변협 관계자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팀 단위로 변호사를 통째로 스카우트하는 등 인재 경쟁이 심해지는 것은 물론, 대형 로펌들이 개인 변호사 몫인 소형 송무 사건까지 싹쓸이하는 ‘법률시장 붕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앤장의 권오창 변호사는 “몇 년 뒤에는 10대 로펌 중 적게는 2~3곳, 많게는 7곳까지도 외국계 로펌에 합병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7월 대란설’까지 거론된다. 위기감을 감지한 국내 로펌들은 개방에 대비한 치열한 변신에 돌입했다. 율촌은 소순무 대표변호사 직할 변호사·회계사·세무사 47명으로 구성된 조세TF를 구성했다. 소 대표는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과세적부심에서 행정소송까지 한 번에 자문할 수 있는 ‘조세 기동타격대’ 형식의 팀을 꾸렸다”고 설명했다. 인재 영입전도 치열하다. 김앤장은 지난달 이재홍 전 서울행정법원장 등 전직 법관 12명을 영입해 ‘싹쓸이’ 논란을 일으켰다. 화우는 이달 초 김대휘 전 서울가정법원장을, 태평양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영입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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