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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홍콩은 지금 축제의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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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9회째인 홍콩 예술축제(아트 페스티벌·HKAF)를 다녀왔다. 홍콩은 신·구가 조화를 이룬 오밀조밀한 거리와 육·해·공 재료가 총동원되는 요리, 다양한 쇼핑 품목으로 그냥 머물기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깔끔하게 단장한 새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이불이나 빨래가 천연덕스럽게 내걸리는 귀여움(?)도 있다. 여기에 봄을 맞아 예술축제가 얹혀졌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 올해 축제는 2월 17일 시작됐고, 3월 27일 막을 내린다.

1 주룽공원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발전소 공연 모습. ‘빛의 공연’이라는 주제답게 정원을 각종 조명 장치로 새롭게 연출했다. [홍콩관광청 제공]

# 뉴욕시티 발레와 ‘발전소’ 공연

내털리 포트먼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블랙 스완’의 무대였던 뉴욕시티발레단이 홍콩을 찾았다. 기자는 게오르게 발란친이 연출한 ‘3악장 교향곡’과 제롬 로빈스가 연출한 ‘군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공연을 관람했다. 발란친은 뉴욕시티발레단을 모던 발레의 전당으로 키운 거장이다.

 그러나 줄거리가 딱히 잡히지 않는 모던 발레는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홍콩 관중도 스트라빈스키·쇼팽의 음악에 맞춰 진행된 첫 두 작품에서는 조용하고 엄숙하기만 한 분위기였다. 마지막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울긋불긋한 치마나 청바지를 입은 발레리나·발레리노의 활달하고 유쾌한 동작에 따라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2 홍콩을 대표하는 축제인 홍콩 아트 페스티벌이 올해 39회를 맞았다. 올 축제엔 영화 ‘블랙 스완’의 배경이 된 뉴욕시티발레단이 초청됐다. 사진은 뉴욕시티발레단 공연 장면. [홍콩관광청 제공]

 ‘발전소(Power Plant)’ 공연은 주룽(九龍)공원 야외무대에서 밤 시간에 열렸다. 설치미술과 조명·음향예술을 합친 공연으로, 중국어 공연 명칭은 소리와 빛의 정원이라는 뜻의 ‘성광원(聲光園)’. 다른 관람객이 많아서 그렇지 혼자 다녔으면 좀 무서울 뻔했다. 여성용 원피스를 여기저기 걸어두고 희미한 빛이 비치는 가운데, 여성들이 단체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작품 앞에선 솔직히 섬뜩했다. 설치·조명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은 그들대로 참고가 되고, 반대로 아무 생각 없는 어린이 관객은 ‘귀신의 집’ 정도로 생각하고 알아서 감상하면 될 듯했다.

 이번 39회 예술축제에는 홍콩 국내외에서 50여 개 공연단이 참여했다. 오케스트라 공연, 모던 재즈, 오페라, 발레와 댄스, 전시 등 200여 가지 프로그램이 선보였고, 뉴욕시티발레단 세실리아 바르톨리, 베를린 앙상블, 엘비스 코스텔로 등의 무대가 특히 주목받았다.

3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된 주룽공원 야경. 4 주룽공원에 전시된 설치미술 작품. [홍콩관광청 제공]

#무대 밖 홍콩

“홍콩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다 귀국하면 3㎏ 정도 살이 찐다”고 홍콩관광진흥청 서울사무소의 이예림 실장은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입맛 당기는 도시라는 뜻이다. 요리의 다양성이나 질과 양을 따져도 서울보다는 홍콩이 한 수 위다.

 한국 관광객에 친숙한 침사추이 지역 너츠포드 테라스(Knutsford Terrace) 거리. 한 선술집에 들어가니 스페셜 메뉴로 생굴을 팔고 있었다. 영국·미국·프랑스·일본 등 전 세계 14개 굴 생산지역에서 수입한 굴이 개당 23~43홍콩달러(1홍콩달러는 약 150원)였다. 산지의 다양함에 놀랐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또 놀랐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신선함에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5 홍콩의 스타 셰프 재키 위의 요리. [홍콩관광청 제공]

 요즘 홍콩의 유명 레스트랑에선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권고에 따라 멸종위기 동식물을 요리 재료로 쓰지 않는 게 보편화됐다. 샥스핀이 요즘 들어 안 보이는 대표적인 재료다.

 디자이너 출신 요리사가 오픈한 레스토랑들이 성업 중인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홍콩의 제이미 올리버’로 불리는 재키 위(Jacky Yu)가 설립한 ‘시옌’(Xi Yan, 囍宴), 전직 디자이너가 주인인 갤러리 카페 ‘SR’(한자로는 方圓) 등이 대표적이다. 재키 위는 “디자이너일 때도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대접하길 좋아했는데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아예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결심했다”며 “미리 예약한 고객의 눈앞에서 바로 요리를 만들어 내놓는 프라이빗 키친(private kitchen) 방식이 제대로 인정받은 것 같다”고 성공 비결을 소개했다. 2000년 테이블 3개의 조그만 식당으로 출발했던 그는 요즘 TV 요리프로그램 진행자, 요리책 저자 등으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다.

홍콩은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고 했던가. 그 아름답다는 홍콩 야경 전경. [홍콩관광청 제공]



홍콩=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티사 호 홍콩 아트 페스티벌 총감독 “학생과 어린이표가 싼 이유요 … 미래 관객에 대한 배려죠”

매우 유쾌하고 정력적인 아줌마 티사 호(Tisa Ho)는 6년째 홍콩 아트 페스티벌 총감독을 맡고 있다. 영국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그는 1988년과 90년 싱가포르 아트 페스티벌에서 마케팅과 큐레이터 책임자로 일했다. 91년부터 8년간 싱가포르 오케스트라와 빅토리아 콘서트홀 매니저를 맡는 등 예술경영 전문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Q 페스티벌 총예산이 9700만 홍콩달러(약 146억원)인데, 홍콩 경마클럽(마사회) 등 외부 기부금도 꽤 많다. 예산 조달이 힘들지는 않나.

 A “예산 중 정부 보조금이 30%고 경마클럽이 8.5%(830만 달러)를 기부했다. 다양한 금액의 스폰서십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재원은 역시 티켓 판매금이다. 예산의 40% 이상이다. 그만큼 표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

Q 학생과 어린이에게는 표를 싼 가격에 제공하던데.

 A “그렇다. 미래의 관객에 대한 배려는 우리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일반인이 사는 표에 어린 관객을 위한 가격이 얹혀 있다고 보면 된다.”

Q 뉴욕시티 발레단이 이번에 처음 초청됐다. 마침 이 발레단이 무대였던 영화 ‘블랙스완’이 인기를 끌고 있고, 주인공 내털리 포트먼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A “(활짝 웃으며) 우리로서는 매우 좋은 타이밍이다.”

Q 지난해 38회 축제에서는 전통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을 초청했던데, 일부러 고전과 현대의 균형을 맞추는 건가.

 A “게오르게 발란친도 모던 발레에서는 이미 고전 아닌가. 지난해는 현대, 올해는 고전이라는 식이 아니라 그해 축제 안에서 프로그램 간 균형, 신구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Q 조심스러운 질문인지 모르겠다. 축제에 대해 중국 본토 정부의 개입이나 요구는 없나.

 A “조심스러울 것 없다. 확실히 답하겠다. 우리는 베이징 컨템퍼러리 댄스, 통영 국제음악제 등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한다. 정부 간 협력이 아니라 예술단체 사이의 협력이다.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의 관계 속에서 공연 마케팅부터 프로그램까지 알아서 진행한다. 안 그랬다면 난 진작에 해고됐을 거다(웃음).”

Q 한국도 문화예술 축제가 느는 추세다.

 A “한국 정부가 문화예술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들었다. 아티스트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 돕는다고 한다. 즐거운 일이다. 홍콩 정부도 한국을 배워 유럽 시장 진출을 도와주면 좋겠다.”

Q 어떤 장르를 좋아하나.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있나.

 A “음악·춤·연극 다 좋아한다. 작가들과 부대끼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지만, 가족이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나만의 공연’이라고 보면 된다(웃음).”

 글·사진=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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