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재지킴이 1000명 약속했는데 2000명 모았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을사늑약(乙巳勒約·일본이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조약)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전남 보성군 보성여관, 울릉도 도동리의 이영관 가옥(등록문화재 235호), 경주 인왕동 윤경렬 선생 옛집, 서울 통인동 이상 시인의 옛 집터…. 모두 문화유산국민신탁(이하 국민신탁·www.nationaltrustkorea.org, 02-732-7524)이 관리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이다. 국민신탁은 훼손 위기에 놓인 문화유산을 매입해 정비하고 하나하나 공개해 나가고 있다.

 국민신탁의 정력적인 활동 뒤에는 20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1년 전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종규(72·사진)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이 발로 뛰어 모집한 문화재 지킴이들이다. 김 이사장은 취임 당시 1년 안에 회원을 1000명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목표치의 2배를 달성했다. 한 달 회비 1만원(청소년 3000원)이니 매달 약 2000만원이 기금으로 걷히는 셈이다.

 “돈도 돈이지만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모였다는 게 중요합니다. 1895년 시작된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는 회원이 360만 명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문화재를 지키는 개미군단이 10만, 100만이 돼야겠죠.”

 국민신탁은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에 의해 2007년 설립된 특수 재단이다. 기부 등을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미래의 문화재가 될 유산까지 매입·보존·관리한다. 역사 전시관이 된 중명전을 관리하고 웅진코웨이와 협약을 맺어 궁궐 우물물의 수질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보호활동도 펼치고 있다.

 “TV 진품명품에 가보를 들고 나온 후손들 보면 얼마나 훌륭해 보입니까. 개인도 그럴진대, 방치하면 없어질 유산을 지켜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 이상의 값진 일이 어디 있겠어요.”

 문화계의 마당발로 유명한 김 이사장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총리, 피에르 쿠뢰 ‘앙드레말로 국제친선협회’ 회장 같은 외국인까지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해외 문화재 환수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임권택 감독,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등은 재능을 기부하는 기여회원으로 가입시켰다.

 “평생을 신라문화를 알리는 데 바쳤던 윤경렬(1916~1999) 선생 옛집을 보전·관리한다는 기사가 나간 뒤 전국 각지에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이 느는 걸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김 이사장은 늘 웃는 얼굴이다. 그러나 직원들에겐 1인 2, 3역을 요구하는 매서운 호랑이다. “봉사와 기부로 움직이는 기관에서 월급만큼만 일하려 들면 직원 자격이 없지요. 봉사해야죠. 선진국은 봉사와 기부를 빼놓고 말할 수 없어요. 우리도 역사에 이름난 사람은 베풀 줄 아는 이들이었어요. 퇴계(退溪) 선생처럼 관료가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 양성에 힘쓴 것도 재능 나눔 아닙니까.” 

글·사진=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