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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수돗물서도 방사능 … ‘원전 피난길’은 주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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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다시 마을로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온 쓰나미 생존자들이 15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에 있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이 마을은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주민 1만여 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교도·AP]


16일 오전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게센누마(氣仙沼)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로 향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쓰나미로 단절된 45번 해안도로 대신 내륙의 4번 국도로 돌아가야 했다. 길은 곳곳이 파였고 중간에 차선이 끊긴 구간도 있었다.

 선박용 저유탱크가 폭발해 전체 도시가 나흘 밤낮으로 불바다가 됐던 게센누마시의 시시오리(鹿折)지구는 여전히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입구부터 기름 냄새가 진동해 담뱃불이라도 떨어뜨리면 또다시 불길이 일 것 같았다.

 이날 도쿄에서 온 소방대가 처음 이곳에서 구조작업을 벌였다. 집터를 찾아온 스기모토 후미오(杉本文郞·49)는 지진 당시 높은 지대의 사무실에 있었다. 그는 “바닥이 울렁거리고 한참 흔들리더니 곧이어 쓰나미가 몰아쳤다. 그 순간 저유탱크가 폭발하더니 거대한 불이 쓰나미를 타고 순식간에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피난소에서의 배급은 하루 두 차례, 주먹밥 반 개와 크래커 두 장이 전부라고 했다.

 게센누마에서 또다시 15㎞가량 북상하자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의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입구부터 자동차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도로는 물론 4층 건물까지 쓰나미에 잠겼던 곳이다. 해안의 3층짜리 청소년연수원은 폭격을 맞은 듯 앙상한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福島) 원전 20㎞ 이내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이날, 피난 행렬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제1원전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반다이아타미(磐梯熱海) 온천지역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가족·친지 13명이 차 4대에 나눠 타고 피신한 한 남성은 “더 멀리 가고 싶어도 휘발유가 없고 숙박시설도 만원이라 묵을 데가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와 이웃한 야마가타(山形)현 요네자와(米澤) 시영체육관과 인근 유스호스텔에는 후쿠시마에서 온 피난민 7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밖엔 눈발이 날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체육관 마루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곳에서 만난 시가 마사키(志賀眞樹·38)는 부인과 두 아이, 장인과 처남 가족까지 9명이 피난해 왔다. 14일 오후 원전과 20㎞ 거리인 집을 나서 후쿠시마현 가와마타마치(川俣町)로 향했지만 피난소가 정원을 넘어 발길을 이곳으로 돌렸다. 생후 8개월 된 딸과 함께 쓰나미 피해지 나미에마치(浪江町)에서 온 스즈키 유키(鈴木裕樹)는 “편의점에 쌀이 떨어져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멀리 니가타까지 가고 싶었지만 차에 기름이 얼마 없어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방사능 불안감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후쿠시마 시내 수돗물에서는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이에 대해 후쿠시마 현청 관계자는 “검출된 방사선량은 기준치의 절반으로 마셔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오이타마(置賜) 보건소는 피폭검사와 건강검진을 받으려는 원전 인근 주민들로 북새통이었다. 보건소의 스즈키 이쿠코(鈴木郁子) 계장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방사능이 검출된 사람은 없었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14일에는 불과 52명만 검사했는데 15일 1044명으로 늘었고, 16일 오전에도 수백 명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게센누마·리쿠젠타카타=박소영 특파원 후쿠시마·요네자와=이승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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