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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메이저 따돌리려 007식 작전 … MB 비밀 친서가 UAE 왕세제 마음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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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간) 아부다비 시내 알무슈리프궁에서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날 한·UAE 양국은 최소 12억 배럴의 유전 개발 참여 계약(양해각서 포함)을 체결했다. [아부다비=안성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유전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직접 진두지휘를 했다. 그러나 협상 초반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원유 얘기만 꺼내면 아부다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한국이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과 경쟁하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돌파한 건 이 대통령의 ‘개인기’였다는 게 협상팀의 전언이다. 이 대통령은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 그의 이복동생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각별한 사이다. 이런 친분이 작용해 2009년 말 아부다비와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무함마드 왕세제

 지난해 5월 무함마드 왕세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은 “양국의 진정한 협력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유전 개발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게 출발점”이란 뜻을 전했다. 이에 무함마드 왕세제는 “대통령의 친서를 받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아부다비의 경제협력 파트너인 만큼 크게 생각해 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이후에도 수시로 친서를 보냈다. ‘특사’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통해 전달한 것만 6, 7회였다. 양측 접촉 과정에서 두 차례 정도 협상이 깨질 뻔한 경우도 있었다. 1, 2주 전에도 아부다비가 “안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다.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미래위 박수민 기획총괄국장은 “대통령 친서가 전달될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졌고 결국 뚫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양국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간 007작전 비슷하게 특별팀을 만들어 협상했다. 메이저 회사들이 서명하기 직전에라도 알았으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그러곤 “특별히 애써준 칼리파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제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에 칼리파 대통령은 “이 대통령 덕분”이라고 했고, 무함마드 왕세제는 “ 이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양국 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칼리파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원전 계약 당시 정상회담에서 “낙타 고기를 못 먹어 봤다”고 말했던 걸 기억해 이번엔 왕실 낙타 고기를 내놨다고 한다.

아부다비=고정애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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