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1년] 대학졸업장을 아들에게 … ‘11학번’ 된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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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 심복섭씨가 정 병장이 고교 시절 받은 표창장들을 가리키며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심씨는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이 전사한 뒤 이사했지만 새 집에도 아들의 방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故) 정범구(사진) 병장의 어머니 심복섭(48)씨. 그의 집 거실 벽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11학번 심복섭’이라고 적힌 명찰이 걸려 있었다. 심씨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것은 외아들 정 병장이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심씨는 21년 전 남편이 집을 나간 뒤 혼자서 정 병장을 키웠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범구가 고교 시절 진로를 고민할 때도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다그쳤어요. 모자(母子) 단 둘이 사는데 집안에 대학 졸업장 하나 없으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고요.”

 정 병장은 심씨의 뜻에 따라 2007년 강원대 물리화학과군에 입학했다. 심씨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 살아온 경기도 수원을 떠나 강원대가 있는 춘천으로 이사했다. 직장도 옮겼다. 하지만 정 병장은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해군에 입대했다 전사하고 말았다.

 강원대는 지난해 8월 정 병장에게 명예졸업장을 줬다. 심씨의 마음은 허전했다. “명예졸업장을 받으니 진짜 졸업장을 아들에게 쥐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아들이 관 속에서 ‘엄마는 나 떠나고 뭐했어?’ 할 것 같았어요.”

 심씨는 지난해 9월 국가에서 나온 정 병장의 사망보상금 중 1억원을 강원대에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원대는 심씨가 기부한 돈으로 ‘고 정범구 호국장학금’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엔 장학금을 받은 학생 5명과 정 병장의 대학 친구 6명이 심씨를 찾아왔다. 심씨 집엔 그들이 선물한 목도리와 장갑이 포장된 채로 놓여 있었다. 심씨는 “고맙지만 범구 생각이 자꾸 나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씨는 정 병장 전사 후 다시 고향인 수원 부근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아들 방을 따로 만들었다. 정 병장의 유품과 사진들로 채워진 방은 거실보다 깔끔히 정돈돼 있었다. “가끔 범구가 와서 생전 모습 떠올리면서 편히 쉬었다 가라고 꾸며놓았다”는 것이다.

 정 병장의 손때가 묻었던 책들과 함께 심씨가 현재 수강하는 세계사 수업 교재가 놓여 있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성적 잘 나올 자신 있으세요?’라고 물으니 또 아들 얘기를 꺼낸다. “범구가 대학 다닐 때 그렇게 성적표를 안 보여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맘 이제 알겠어요. 나도 성적 안 나오면 아들한테 안 보여줄 것 같아요.”

글=남형석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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