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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화제극 〈러브스토리〉작가 송지나

중앙일보

입력

송지나 하면 떠오르는 건 '틈새' 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 시계〉 〈달팽이〉 〈카이스트〉 등을 통해 모두 기존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소재나 형식에 도전해왔다. 시청자의 기호보다 작가 본인이 개척하고 싶었던 틈새 공략으로 드라마의 지평을 넓혀온 것. 그의 새 드라마에 기대감을 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엔 뜻밖이다.
SBS에서 방영 중인 〈러브 스토리〉의 소재와 주제가 '흔해 빠진' 사랑인 것. 숱한 트렌디 드라마에서 지지고 볶고 삶았던 식상한 메뉴를 고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도 못다한 틈새가 있는 걸까.

- 사랑 이야기를 택한 이유는.
"사람들이 너나 없이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데도 그 방법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 쉽게 설명한다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TV나 영화에서 만들어 낸 허구의 사랑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 계기는.
"〈달팽이〉를 끝내면서 미진한 점들을 느꼈다. 기획은 지난 1월부터 했다."

- 역사물이나 사회물을 쓸 때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엔 사랑 이야기라면 자신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역사물이나 사회물보다 쉽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 시계〉에도 로맨스는 있지 않았는가.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깨닫는 게 있다. 〈여명의…〉를 만들고 나선 내가 '인간' 에 대해서, 〈모래시계〉를 만들고 나선 '사랑' 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랑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작가가 진짜 작가인가라는 생각이 은연중 들었던 게 사실이다."

- 방송 작가에게 시청률은 큰 부담이다. 시청자의 기호에 맞추고 싶은 유혹은 없는가.
"'시청자는 우주인' 이란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의 취향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균형을 잃어버린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보고 싶고 내게 재미있는 얘기를 쓰자는 생각이다. 물론 시청률을 올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예를 들자면.
"가령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극명한 대비에다 불륜을 적당히 녹이는 식이다. 드라마 설정에서 신분 차이가 있으면 드라마를 끌고 가기가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양쪽의 상황과 주변 인물을 보여주다 보면 원고 분량을 메우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러브스토리〉에선 이런 부분을 제외했다."

- 대신 어떤 방식을 선택했나.
"각 에피소드마다 공간과 등장인물을 최대한 압축했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가능한 한 깊이 파고 들기 위해서다. 인물설정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택했다. 주차장 정산소나 유실물 센터의 여직원, 지하철 기관사와 요리사 등이 그렇다."

- 여덟 편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구별되나.
"각 편은 다양한 사랑의 풍경 중 하나를 골라 클로즈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주 〈해바라기〉에선 사랑의 감정 중 소유욕과 집착을 확대시켰으며 이번 주 '메시지' 에선 핸드폰이나 호출기를 통해 '의사소통'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을 되짚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형식도 눈에 띈다.
"2시간짜리로 구성된 2부작 단막극 여덟 편이다. 사실 방송사측에는 큰 부담이다. 시청률 면에선 연속적인 16부작이 훨씬 유리하다.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면서 시청률이 중간에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시도의 의미는.
"드라마의 밀도를 살려 작품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베스트 극장〉이나 〈TV 문학관〉 처럼 자리만 잡는다면 이 프로가 신인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등용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방송사의 극본 공모를 통해 등장한 작가라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기량을 닦을 공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작가가 모자라니 방송사에선 신인에게 선뜻 16부작을 맡기지만 16부작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대부분 호흡이 달려서 중간에 지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지금의 시스템은 가능성 있는 작가를 키우기보다 오히려 마모시키는 실정이다. 이런 단막극 형식이 방송사에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마지막으로 〈러브 스토리〉를 본 시청자들이 뭘 느꼈으면 좋겠나.
"PC 통신방에 들어가 보면 사랑에 관한 사연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내숭과 하소연에 그친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러브 스토리〉 여덟 이야기

①해바라기〓스토커를 통한 왜곡된 사랑의 소유욕과 집착. 사랑은 '이래야 하는 것' 이란 규정을 미리 해두고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②메시지〓사랑은 없다, 그래도 사랑은 있다. 사랑을 믿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핸드폰.호출기 등 통신 수단을 소재로 그린다.
③유실물〓놓쳐버린 사랑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가까이 다가온 사랑을 몰라본다는 이야기.
④오픈 엔디드〓이 시리즈 중 유일하게 슬픈 사랑 이야기.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인이 6살 연하의 남자를 만난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사랑한단 고백을 하지 못하는데.
⑤로즈(가제)〓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사랑. 수배자의 딸과 형사가 사랑에 빠진다.
⑥미스 힙합 & 미스터 록〓힙합과 록이 조화를 이룬다. 세대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사고 방식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⑦불면증, 매뉴얼 그리고 오렌지 주스〓사랑엔 정답이 없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여자와 러브스토리 만화를 수백편 그렸던 만화가의 로맨틱 코미디.
⑧기억의 주인〓상대방의 기억까지 끌어 안을 때 사랑은 완성된다. 심장이식을 받은 여자가 죽은 여자의 기억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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