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조종사 "못해먹겠다"무더기 제대신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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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나라 공군 비행사들의 무더기 제대신청 사태가 빚어진 적이 있다. 공군의 처우가 나쁜 것이 아니라 민간 항공사로 가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공군 비행사의 조기 제대문제가 불거졌다. 북한에서 공군 조종사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선망 직종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비행사의 처우가 장마당의 장사꾼들보다 못할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가정생활이 쪼들려 생계를 잇기가 힘들 정도라는 것. 이러다보니 아예 비행기 모는 것을 접겠다는 것이다.

대북전문매체인 열린북한방송은 9일 공군기지가 있는 황해북도 황주 소식통을 인용해 "올 1월 황주 비행부대에서만 무려 5명의 비행사들이 가정생활의 쪼들림을 사유로 내세워 제대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비행사들이 이처럼 생계난을 호소한 것은 외부의 지원이 차단되면서다. 자국의 물자가 줄어들자 비행사의 처우수준을 낮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북한)비행사들은 월급을 약 1만원씩 받고, 한 달 배급으로 계란 50알, 초콜릿 10판, 육류 3kg, 기름 1kg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을 꿈도 꾸지 못할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무상배급이 줄어들기 시작해 이제는 겨우 한 달에 한 번 계란 한 판 받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월급은 7000원으로 줄었다. 특히 "보안상의 이유로 가족과 함께 부대 내에서 조직생활을 하기 때문에 시장활동도 자유롭지 못해 오히려 일반 주민들보다 생활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일부 비행사는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칠성판(관)'을 등에 진 신세"라며 한탄하기도 한다.

북한당국은 공군기지를 떠나는 비행사들에게 '제대 뒤 당 간부로 등용하겠다'며 회유하고 있지만 비행사들의 반응은 신통찮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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