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 신화를 만드는 광대, 구히서

중앙일보

입력

그러니까 연극은 20세기 우리 역사가 겪은 모든 것들을 어느것 한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겪고 살아오면서 20세기 우리들의 초상을 만들어냈다. 그 얼굴은 싫든 좋든 우리의 얼굴이다.그리고 우리는 그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며 내일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에 와있다.

IMF의 신세를 지면서 온나라 살림이 뒤흔들려 아우성칠 때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늘 경제위기고 늘 실직상태여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는 자조적인 농담이 오갔다. 온나라가 구조조정이니 불황이니 실직이니 노숙자니 하고 요란하게 흔들릴때 연극인이라고 편안할리 없겠지만 여러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연극판 사람들이니만큼 그 모든 어려움이 '우리에게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고 생각할만도 하다.

임성구의 신파극이 장안의 화제로 인기를 끌었던 때도 있었고 1936년에 세워진 동양극장의 고등신파가 성가를 올린 때도 있었고 해방 후에는 여성국극이 돈을 긁어모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던 때도 있었고 악극이 신바람을 낸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급한 무대예술을 내걸고 신극운동을 시작했던 토월회(1923년)나 그 뒤를 이은 극예술연구회(1931년)로 대표되는 신극운동의 여러 갈래에서 순수예술로서의 연극을 부르짖던 사람들에게는 풍족함보다 어려움이 많았고 그들의 후배들이 사는 오늘의 연극계 형편도 별로 나아진게 없다. 현대연극 한세기에 연극살림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살림은 그렇다치고 연극무대의 내용이나 사람들의 지적자산 분량은 어떨까? 서양식 극장 개념을 받아들인 현대연극 한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쌓아온 연극의 내용, 그 정신적인 자산의 분량은 어떤가? 이런 질문은 연극인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텅빈 객석을 떠올리며 관객없는 연극에 대한 변명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극은 재미없다, 연극을 누가 보느냐, 그 고생하면서 연극은 왜 하느냐, 하는 말들은 연극판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고 연극이 다른 분야의 창작예술에 비해 낙후돼 있다는 평가도 못들은 채 해도 들려오는 소리다.

우리 연극 한세기의 나이 속에는 뻐기고 거들먹거리는 자랑스러움보다 그런 무심한 비평에 주눅들어있는 면이 많다. 오히려 연극인들 스스로 그런 자괴의 말들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전반은 일본을 통해서 배운 서구연극이 우리 연극의 바탕이었고 20세기 후반은 서구 여러나라에서 직수입해온 서양연극이 우리의 잣대였던 탓에 그런 뒤틀린 말들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러면서도 우리 연극의 막은 오른다. 좋은 연극을 열심히 하겠다는 표어를 내걸고 정말 열심히 괜찮은 연극을 만드는 극단도 있다. 전통공연예술 양식의 현대적 접목을 내걸고 부단히 뛰는 극단도 있다. 한국적 표현이라거나 우리 정서의 표현이라는 화두가 실험적인 작업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관객의 박수갈채가 있건 없건 참 열심히 뛰면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

20세기를 보내는 이 시간에 선 연극인들은 그들의 선배들보다 훨씬 다양한 경로로 연극을 배우고 세계무대의 변화를 직접 보고 들으며 제각각의 무대를 만들고 있다. 1999년 한해 동안에도 그러한 다양한 무대들이 만들어졌다.

더 많은 관객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뮤지컬을 만들고 문화산업의 하나로 해외시장 진출이 이뤄지고 연극제를 진정한 축제로 만들려는 노력도 이뤄졌으며 우리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연극기법으로 다시 구성한 역작들이 등장했다.

연극.마당극.마당놀이.총체극.뮤지컬.해체연극.서사극.제의극.마임.무언극 등 무대의 형식과 내용을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낯설지 않다. 20세기 마지막 시간에 서있는 오늘의 연극인들은 올해 연극제의 주제를 '공연양식의 재발견' 으로 내걸었고 선배들이 풀어보려 애쓰던 문제를 붙잡고 아직도 씨름하면서 돌아보고 정리해가며 뭔가를 찾아내겠다고 저마다, 그리고 함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소리이고 의미이며 존재 자체다. 생각은 표현으로 생명을 얻고 말로 이름지어짐으로써 탄생된다. 그래서 민족을 그 민족으로 이름지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연극은 인간이 지닌 다양한 표현언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언어인 말을 도구로 하는 예술이다.

연극인들은 오늘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의논이 나오는 나라에서 우리말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연극을 통한 교육이나 교육을 위한 연극이 전혀 채택되지 못하고 있는 교육제도 속에서 극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관객으로 삼아야하는 어려움 속에서 사는 '피리를 부는 사람' 들이다.

그들은 없거나 아주 부족한 순수예술 지원정책 속에서 살며 연극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현대는 신화를 잃어버린 시대라면서 신화를 회복하는 것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책임져야할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신화를 만들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역할은 고대의 제사장.사제.무당들이 했지만 오늘날에는 예술가들이 그 역할을 해야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를 웅변적으로 전해주는 우리 무가(巫歌)가 있다.

동해안 별신굿이다. 여기에는 무당.화랭이(화랑).창부.광대가 한줄에 꿴 한식구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연극인들은 흔히 자신을 광대라고 부른다. 극단자유의 프로그램에는 배우는 앞광대, 뒷스태프들은 뒷광대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극인들은 오늘의 광대, 오늘의 신화창조와 전승을 책임진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새 천년이 오고 20세기가 간다고 떠들고 다짐하는 시간, 이런 시간에 우리 연극은 바리데기에서 바리공주가 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미 아비가 누구인 줄 알고 나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저승으로 먼 여행을 떠나 생명수를 가져다가 부모를 살린 바리데기처럼 무명 속에서 일어나 공주의 신분을 찾고 힘겨운 저승여행을 시작하는 그런 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극의 새 세기를 위해, 우리 모두의 새날을 위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