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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드레곤 헤드〉vs 소설 〈파리대왕〉

중앙일보

입력

모치즈키 모네타로 vs 윌리엄 제랄드 골딩

〈드래곤 헤드〉의 작가 모치즈키 모네타로는 80년대 〈퍼덕이는 금붕어〉와 같은 청춘 코믹물을 다루던 작가였으나 90년대 들어와서는 인간심리의 끝을 다루는 공포물인 〈좌부녀〉나 〈드래곤 헤드〉 같은 작품을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해 파리대왕의 작가 윌리엄 골딩은 인간 내부에 자기잡고 있는 어두운 면을 노출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온 작가로서 8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두 작가는 인간내면의 악의 덩어리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대표작인 〈드래곤 해드〉와 〈파리대왕〉의 유사성은 확실히 눈길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

1,수학여행 vs 소라의 소리

수학여행(드래곤 해드)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들로 메워진 수학여행 단을 태운 기차, 이 지리하기까지한 평화가 한 순간의 섬광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주인공 테루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기차와 널부러진 시체들뿐이다.
정신을 차린 테루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열차 내부를 돌아다니던 중 의식불명의 여학생 세코를 찾아 식당 칸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세 번째 생존자인 다카하시를 만난다.
하지만 거기에 먼저 와 있던 다카하시는 언제나 이지메의 대상이었던 나약했던 다카하시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야성과 혼돈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세 명의 생존자는 말 그대로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 터널을 탐사하고 술로 불을 피우면서 생존을 위한 일을 하나씩 해 나간다.

소라의 소리(파리대왕)

마찬가지로 파리대왕에서는 사춘기가 되기 전의 일단의 소년들이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하여 무인도로 올라온다. 그리고 조용한 문명인의 위엄을 가진 랠프가 이성사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소라를 불어 회의를 가진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문명의 공기 속에 있던 소년들은 랠프를 대장으로 세우고 그의 지시에 따라 봉화를 피우는 등의 섬 생활을 계획한다. 이 때까지는 소년 성가대의 리더인 잭도 천진한 미소의 소년일 뿐이다.

2, 화장 vs 색칠한 얼굴과 긴 머리

- 화장(드래곤 헤드)

비교적 이성을 지키고 있던 테루와 점점 광기를 드러내는 다카하시의 충돌은 계속 이어지고 급기야 이들은 각자의 거주공간을 따로 가지게 된다. 그 후 다카하시는 바닥에 널려 있던 화장품으로 온몸에 토인과 같은 문양을 그리며 원시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세명의 생존자끼리라도 원만한 사이가 되기를 희망하며 비교적 다카하시에게 우호적이었던 세코도 자신들을 지도해 줄 것이라며 생활지도 교사였던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끌고 와 의자에 앉히며 잔인하게 미소 짓는 다카하시를 보고는 공포에 몸을 떤다.

그가 온몸에 문양을 그린 이유는 그가 세토에게 한 말로 알 수 있다.
"나도 처음엔 무서웠지, 하지만 금방 바뀌었어. 나는 늘 왕따여서 알 수 있어. 친구가 되든지 아님 없애 버리든지 둘 중 하나라는 거야. 무서운 것은 친구가 되는 거야."

천성적으로 나약했던 그는 내재되어 있던 잔인성을 폭발시키며 공포의 친구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다카하시는 살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이 온몸에 문양을 새겨야 한다며 수면증 증세를 일으켜 자고 있는 세토의 몸에 자신과 같은 문양을 그려 넣는다.
그러던 중 땅이 울리고 기차가 흔들리는 위급한 상황이 되자 다카하시는 공포와 세토의 육체로 인해 성적 흥분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녀의 몸 위에 사정을 하게 된다.
심리적인 죄책감을 느낀 다카하시는 그런 자신을 책망하듯 바라보는 것 같은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급기야는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끌고 기차 밖으로 나간다.

- 색칠한 얼굴과 긴 머리(파리대왕)

멧돼지 사냥에 나선 잭은 사냥하기 위해서라며 얼굴에 하얗거나 붉은 찰흙과 숯으로 얼굴을 칠한다. 그리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무시무시한 낯선 사람으로 변한 것을 보며 신명나게 웃어댄다.
파리대왕에서는 말한다. '이제 마스크는 저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마스크 뒤에 숨은 잭은 수치감과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이 말대로 드래곤 해드의 다카하시나 파리대왕의 잭은 문명의 얼굴이 가지는 수치심과 열등감을 지울만한 야성의 가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야성의 힘 때문인지 잭의 사냥부대는 멧돼지 사냥에 성공하여 랠프 앞에 서나 랠프의 얼굴은 그들을 칭찬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유는 그들이 봉화자리를 비우는 사이 불이 꺼졌고 그 때 마침 그들을 구조할 수도 있었던 배가 지나갔기 떄문이다.
이 일로 잭과 랠프의 불화는 시작된다.
폭력이 성공리에 독점되면 사람들은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권력을 이동시킨다.
위와 같은 폭력과 권력의 법칙에 순응한 소년들은 잭을 따라 랠프의 무리를 나오게 된다.

3,어둠에의 제물 vs 어둠에게 주는 선물

- 어둠에의 제물 (드래곤 헤드)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낸 다카하시는 선생을 부서진 벽에 묶고 장대에 묶은 칼로 찌르기 시작한다. 이를 보고 무슨 짓이냐며 항변하는 세코에게 다카하시는 대답한다.
"이건 의식이야. 미니라를 어둠의 주인에게 바치는 거야 . 우리들의 제물이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에게 제물이 필요해. 녀석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힘을 가진 제물이 이 정도 어른이면 충분할 거야. 왜냐면 모두 미나미를 무서워했잖아."

이런 말을 하면서 다카하시는 여지껏 자신이 의지해 왔던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칼로 찌르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어둠에 의존하여 자신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서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찔러야 하는 것이다.

- 어둠에게 주는 선물 (파리대왕)

잭은 암멧돼지를 사냥한 후 암멧돼지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일어나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괴물이 살고 있는 동굴 앞에 막대기를 꼽고 그 위에 멧돼지의 머리를 찔러 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것은 짐승에게 줄 대가리다. 선물이지.'
잭은 어둠과 친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카하시와 같이.

4,폭주 vs 죽음 앞에서

- 폭주(드래곤 헤드)

미나미 선생의 시체를 찌르며 광기를 보이는 다카하시를 본 세코는 다음은 자신 차례일 거라는 공포에 다카하시에게서 도망친다.
이런 세코를 본 다카하시는 흥부하여 칼을 휘두르며 세코를 쫓아오고 결국 칼에 찔리게 될 상황에 처한 세코.
하지만 주인공은 테루였다. 기차 지붕에서 뛰어내린 테루는 다카하시의 칼을 자신의 팔로 막고 세토를 구한다. 그리고 테루는 다카하시와 싸우며 세토를 피난시킨다.
위에서 보듯이 폭력은 혼돈의 시대 불화 하는 대립 항들을 관통하는 유도동기인 것이다.

- 죽음 앞에서(파리대왕)

멧돼지를 잡아 고기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잭의 패거리들은 반갑지 않은 랠프의 방문을 받는다. 이야기 도중 폭풍의 전장인 천둥과 폭우가 내리자 잭의 패거리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비명을 지르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이에 잭은 춤을 추라고 명령을 하고 공포심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형을 이룬 채 껑충껑충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천둥소리가 커져가자 공포심에 짖눌린 소년들에게 잭은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하며 소리를 지르고 때맞춰 숲 속에서 무엇인가가 기어 나오자 더욱 공포에 질린 소년들은 소리를 지르며 창으로 그 짐승을 마구 찌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의 무리는 흩어지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짐승은 그 정체를 드러낸다.
소년의 이름은 사이먼이었다.

5,목숨을 건 싸움 vs 사냥꾼의 소리

- 목숨을 건 싸움(드래곤 헤드)

세코를 보낸 후 둘만 남게 된 테루와 다카하시. 이 둘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칼을 휘두르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의 뒤로 시커먼 먹구름 같은 것이 그들을 향해 덮쳐온다. 이렇게 생매장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다카하시는 테루와의 싸움도 잊은 채 웃으며 먹구름 속으로 달려간다.어둠의 존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이 때 테루 또한 어둠의 존재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다카하시와는 반대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탈출한 세토와 테루는 다카하시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다툰다.
하지만 이 둘은 출구를 찾은 후 화해를 하고 지상으로 나온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온 세상.
그러나 테루와 세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태양의 세상, 회색 분진으로 가려진 세상이었다. 세상은 멸망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 사냥꾼의 소리(파리대왕)

사이먼의 죽음에 문명인다운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랠프에게 잭은 야만인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랠프 무리에 있는 새끼돼지의 안경까지 훔쳐간다. 이에 항의하러 찾아간 랠프와 새끼돼지를 잭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물들은 로저라는 꼬마가 바위를 굴려 새끼돼지를 죽이게 된다. 이에 잭과 랠프는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랠프는 큰 상처를 입고 도망가게 된다.
이에 멧돼지 몰이와도 같은 추격전이 벌어지고 랠프를 잡기 위해 숲에 붙인 불이 랠프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날카로운 창날에 찔리기 직전 랠프는 공포에 허우적 거리며 숲에서 해변으로 넘어지듯 달려나가고 어떤 하얀 발 아래에 넘어진다. 천천히 고개를 든 랠프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챙 모자 그리고 견장과 연발권총과 제복 앞에 나란히 달린 금단추였다. 그는 구원받은 것이었다. 그 후 랠프는 해군장교의 질문에 대답하며 자신의 잃어버린 착한 마음과 어두워진 동심 그리고 떨어져 죽은 지혜로웠던 새끼돼지를 떠올리며 목매여 울었고 다른 소년들도 어깨를 떨며 울음을 터트린다.

공포는 폭력을 수태시킨다.

드래곤 헤드와 파리대왕은 파국과 재앙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존재의 취약성을 상기시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한 모양 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파리대왕은 인간의 본질 속에 내재한 악의 덩어리를 파헤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드래곤 헤드의 이야기는 계속되며 인간의 내재적 어둠의 파해법을 밝혀 간다는 점이다.

드래곤 헤드에서는 말한다. 인간의 내재적 어둠을 극복하는 방법은 인간 안에 있으며 어둠에 물드느냐 어둠을 지우느냐의 선택은 어둠이 숨어있는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까지 어렴풋이 보여주지만 파리대왕에서는 폭력과 어둠에 젖어 잃어버린 소년들의 착한 마음과 흐려져버린 동심에 애닯게 우는 것이 전부이다.

안정된 세계의 가치가 몰락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본능이나 열정을 행동의 유일한 지침으로 여기게 된다. 마치 드래곤 헤드의 다카하시나 파리대왕의 잭과 같이 이들에게는 넓어진 세계를 받아들일 합리적 정신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둘이 합리적인 정신 대신 공포에 맞서 들게 되는 어설픈 칼과 창은 위험과 불안을 자청하는 상징물일 뿐이다.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하고 살인했다는 두려움에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듯이 폭력은 감염체이다.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폭력에 취하게 되고 폭력에 취한 사람들은 끝내 자신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중에서 대립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에 대한 유도동기일 뿐이다.

드래곤 헤드와 파리대왕은 폭력과 죽음, 권력, 불안이 일대 일로 혹은 일대 다로 대응되며 작품의 미학을 만들어 간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이 보여주는 공포가 불러들인 폭력은 공포에 맞서는 허장성세일 뿐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칼과 창이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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