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부 세금폭탄 + MB 정부 보금자리 … 전세대란은 두 정권 합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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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아동의 한 중개업소 앞에서 전셋집을 얻으려는 사람이 가격 표시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중앙포토]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정부·여당의 무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이사철이 코앞인 데다 4·27 보궐선거도 맞물려 있어 여당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달 11일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 전·월세 가격이 급등해 안 그래도 어려운 서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정부를 질타한 것도 그래서다. 전셋값 급등의 원인은 워낙 중층적이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부족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매매와 달리 전세는 가수요가 거의 없어 가격이 수급을 고지식하게 반영한다”고 말한다.

시장조사업체인 부동산 114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입주물량은 2009년 28만3000 가구, 2009년 29만6000가구, 지난해 19만2000가구로 3년 연속 30만가구에 못 미쳤다. 해마다 30만 쌍 이상 쏟아져 나오는 신혼부부와 재건축 때문에 사라지는 집 등을 고려하면 연 35만~40만 채 정도는 공급돼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특히 전세 수요가 몰리는 소형 아파트의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급부족의 뿌리는 노무현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범은 분양가 상한제와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기로 한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건설회사들은 2007년 말 분양 물량을 일시에 쏟아냈다. 그 바람에 건설 여력이 대폭 줄어든 데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쳐 미분양이 쌓이자 아예 집 지을 생각을 포기한 회사가 수두룩했다. 양도세 중과는 시행이 미뤄졌지만 시장엔 큰 영향을 미쳤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정책연구실장은 “수익률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여긴 투자자들이 작은 집을 여러 채 보유하는 것을 포기했다”며 “대부분 값이 더 많이 오르는 큰 집을 선호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자연스럽게 건설업체도 중대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공급물량 대부분이 중대형으로 채워졌다.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것도 영향이 컸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은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집을 사는 대신 전세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도 전세난 심화에 한몫했다. 서울 외곽에 싼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주택구입을 미루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분석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아직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는 상황인데 공급부족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공급물량 부족’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다세대·다가구 주택까지 포함한 올해 입주 물량은 31만1000가구로 민간기관의 집계보다 12만 가구 가까이 많다. 이원재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공급부족으로 전세난이 생기면 곧바로 매매가에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거래 부진 때문에 집을 살 사람들이 전세로 눌러앉는 게 근본적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전세난은 2008년 말 금융위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전세금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정부 시각은 시장 상황과 온도차가 크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9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전세난은 매년 이사철에 나타나는 수준으로 예정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올 들어 전세난은 전례 없이 심각해졌다. 올 1월 13일에도 정 장관은 주로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늘리는 대책을 내놓은 뒤 “서랍이 모두 비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세문제는 조금도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국토부는 이달 19일 부랴부랴 매입임대사업자의 자격을 완화하고, 리츠 등에 세제혜택을 주는 등 단기에 수급을 늘리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늑장 대응이란 지적이 많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사장은 “2월 대책은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내용”이라며 “지금은 때를 놓쳐 자칫 뒷북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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