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봄소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동양사회에서 ‘요순(堯舜)시대’는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런데 요 임금이 세상을 떠난 해도 무척 추웠다. 5세기 말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경숙(劉敬叔)이 편찬한 『이원(異苑)』에는 “진(晉) 태강(太康) 2년 겨울이 크게 추웠는데 남주(南州) 사람이 보니 백학(白鶴) 두 마리가 다리 밑에서, ‘올해 추위는 요(堯) 임금이 세상 떠난 해(崩年)와 진배없다’고 말하고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올해 같은 폭설을 ‘소의 눈까지 눈이 쌓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국책(戰國策)』 『권(卷) 23』에, “위 혜왕(魏惠王)이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일을 앞두고 큰 눈비가 내려 심지어 소의 눈까지 쌓였고〔至於牛目〕 성곽이 무너져 잔도(棧道:낭떠러지 사이를 잇는 길)를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에서 유래한 말이다.

 옛 선비들이 겨울에 피는 매화에서 봄을 읽은 것은 추위에 꺾이지 않는 절개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成一:1538~1593)은 “옛 절의 매화향기에 봄소식이 있구나(古寺梅香春有信)”라고 노래했고, 또 다른 시에서도 “봄소식이 매화가지 끝에 왔네(春信到梅梢)”라고 노래했다. 조선 중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원당춘첩(元堂春帖)’에서 “오늘 아침 봄소식이 뜰의 매화에 이르니/세 번째 볕이 이미 다시 왔음을 아노라(今朝春信到庭梅/知是三陽已復來)”라고 읊었다. 첫 번째 볕은 음력 11월 동짓달에 오고, 두 번째 볕은 음력 12월 섣달에 오고, 음력 정월에 세 번째 볕이 오면 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노년이면 봄이 오는 것조차 기쁘지만은 않다. 조선 초기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사가집(四佳集)』에는 “늙으니 봄이 더디길 바라지만 봄은 더디지 않네(老願春遲春不遲)”라는 시가 있다.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년~1628)도 “억지로 봄맞이 즐거움 만들지만/되레 거울 속 백발이 가련하네(强作迎春樂/還憐鏡裏絲)”라고 노래했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도 ‘안타까움(可惜)’이란 시에서 “무엇이 그리 급해 꽃은 날리는가/늙어 가니 봄이 더디기를 바라네/안타깝구나 기쁘게 즐기는 곳/어디가도 젊은 때는 이미 아니네(花飛有底急/老去願春遲/可惜歡娛地/都非少壯時)”라고 오는 봄을 기뻐하기보다 가는 세월을 슬퍼했다. 엊그제 지리산 언저리에 가보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시샘하더라도 봄처녀는 이미 새단장 중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