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물가 상황 대단히 좋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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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뒤에도 멈춰설 기미가 없다. 사실상 내전(內戰) 상태에 빠진 리비아가 원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수퍼 스파이크(Super Spike:유가의 장기급등세)가 다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3년 전인 2008년 7월 서부텍사스유(WTI)가 147.50달러까지 치솟았던 악몽이 재연될 기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8위 생산국인 리비아는 이번 소요 사태로 일일 원유생산량이 최소 20% 이상 감소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리비아의 감소분만큼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석유비축분을 방출할 움직임이지만 불안심리를 잠재울지는 의문이다. 리비아 사태는 이집트·튀니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족분쟁으로 치달으면 사태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다 중동지역의 정정(政情) 불안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까지 위협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사소한 돌발사태에도 가격이 뜀박질하기 일쑤여서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다.

 어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대단히 비(非)우호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위기의식이다. 비단 유가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돌출하고 있다. 옥수수·원당·구리 같은 필수 원자재는 물론 커피·코코아까지 연초 대비 두 자릿수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해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 급등과 위안화 절상으로 중국발(發) 물가 상승인 ‘차이나플레이션’까지 한국을 덮치고 있다. 수입물가 상승과 차이나플레이션은 1~3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

 한국은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물가는 0.68%포인트 상승하는 구조다. 올해 5% 성장과 3% 물가 목표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안전자산 선호심리도 한국 경제를 괴롭히는 요인이다. 지난해 대거 밀려온 해외자본이 선진국으로 철수하면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도 몸살을 앓고 있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려면 마땅히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유류세 인하부터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동원하라고 만든 장치가 30%까지 조정 가능한 유류 탄력세율(彈力稅率)이다. 정부는 2008년에도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0% 인하한 적이 있다. 필수 원자재에 대한 정부 비축분도 늘려야 한다. 현재 60일분으로 일률적으로 규정된 비축목표량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국제공조 역시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국제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는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비용상승(cost-push)형 인플레이션은 가장 대처하기 고약한 과제다. 해외 불안이 진정될 때까지 정부·기업·가계가 각자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원가절감과 비(非)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가계는 낭비요인을 줄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과거에도 참고 견디며 외부 쓰나미를 헤쳐 나온 경험이 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위기의식을 점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