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클릭2011] 미국판 '막장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한국 드라마가 막장이라고들 하지만 미국 TV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 CW네트워크의 인기 드라마 '가십걸'은 열댓명의 출연진 대부분이 연애관계로 얽히고 설킨 막장 중 막장 드라마다. MTV의 리얼리티쇼 '저지 쇼어'는 뉴저지 지역 해변을 중심으로 흥청망청 파티라이프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삶을 담은 리얼 막장쇼다.

그리고 2011년 현재 미국은 문제의 드라마 '스킨스(Skins)'를 두고 막장 논란에 한창이다. 2007년도부터 방송 중인 영국 TV 드라마를 MTV가 리메이크한 것으로 올해 초부터 방송 중이다. 드라마는 10대 청소년들이 술 마약 문란한 성생활에 찌들어 타락해가는 비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스킨스' 속 10대들은 화려함이나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다. 목적도 희망도 없이 방황하고 스스로를 학대한다.

'스킨스'의 첫 에피소드가 326만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하며 전파를 타자마자 학모부들은 발칵 뒤집혔다.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같은 프로그램을 당장 TV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반기를 든 것이다. 130만 회원으로 구성된 학부모방송감시위원회는 '스킨스'가 미성년 포르노와 다름 없다며 광고주들에게 압박을 가했고 실제로 타코벨 GM 서브웨이 등 대형 광고주들이 이 영향을 받아 광고 계약을 철회했다.

많은 부모들이 "무조건 '스킨스'를 못 보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막는다고 못 볼 아이들이 아니다. '스킨스'는 TV-MA 등급이다. 17세 미만 시청자들에겐 적절치 못한 프로그램이란 뜻이다. 그러나 닐슨사의 조사에 따르면 '스킨스' 첫회 방송 시청자 중 120만명이 18세 이하였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스킨스'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일각에선 '스킨스'를 지지하는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10대들의 현실은 '스킨스'보다 심각하다"며 "'스킨스'가 그려내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루스 마커스는 "부비부비 춤을 못 추게 하면 학교내 댄스 파티 불참운동을 하고 파티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면 미리 취해서 파티장에 나타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스킨스'는 오히려 일탈하는 10대들의 모습 속에서 술과 마약 섹스 어떤 것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마약중독문제 전문가인 마이카 로빈스는 "'스킨스'는 내가 만나는 수많은 10대들의 일상을 가장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드라마"라며 "기성세대가 이를 외면하고 막으려고만 한다면 아이들과의 소통 자체가 단절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 학부모가 인터넷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아이들이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는지 부모로서 신경쓰고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떤 TV 프로그램도 가르칠 수 없는 중요한 삶의 가치와 판단 능력을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일일 겁니다. 그 어떤 TV 프로그램도 부모의 소중한 가르침을 아이들에게서 앗아가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스킨스'를 봅니다."

TV나 영화의 시청자 등급에 잘 따라붙는 약자가 'PG'(Parental Guidance)다.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킨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무조건적 '금지' 보다는 부모들의 올바른 가르침이 '스킨스'에 노출된 10대들을 위한 최선일 것이다.

이경민 문화부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