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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해 발굴 미끼 … 미, 말려들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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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BS가 공개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남 김정남의 어린 시절 모습. KBS는 프랑스 프로덕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제공받아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을 공개했다. 1945년 세 살 때의 김정일(왼쪽)과 10대 시절의 김정일(가운데). 최근 해외를 전전하고 있는 김정남의 어린 시절 모습. 1945년 김정일(3세), 10대 시절 김정일, 어린 시절 김정남(왼쪽부터) [KBS 화면 촬영]


지난달 25일 북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미 국방장관에게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을 전격 제의하고 미국이 이를 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본지 2월 19일자 1면) 그 파장이 주목된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3차 핵실험, 대남 추가 도발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미 회담 제안 엿새 전 같은 급의 대남 회의를 제의해 이뤄진 남북 군사실무회담(8~9일)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바 있다.

 북한의 제의는 의제나 형식 등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다. 의제로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을 내놓았다. 외교안보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 등 미국의 관심사를 미끼로 던짐으로써 회담 성사를 위해 나름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미국은 ‘말려들지 않겠다’는 답을 보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6자회담이든 북·미 양자 대화든 ‘서울을 거쳐서 오라’는 미국의 확고한 원칙이 있다”면서 “NLL 의제는 남북한 사이에 논의할 문제이지 북·미 간에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핵화를 의제에 포함시킨 것은 북·미 핵군축회담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측이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과 관련, 정부 관계자는 “유해 발굴은 안보 이슈와 관련 없는 인도적 사안이며 북·미 간에 별도로 논의되고 있는 일”이라며 “군사회담 테이블에 올려 유해 발굴로 외화벌이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명의로 주베이징 북한 대사관을 통해 미측에 메시지를 보낸 것도 주목거리다. 북·미 뉴욕채널을 우회한 것은 새로운 대화 통로를 만들려는 시도일 수 있다. 북한의 지재룡 신임 중국대사는 북한 권부 실력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측근이다. 미국은 지난 15일 게이츠 장관이 “노”라고 답변하기까지 북한의 제안을 20여 일간이나 묵혀두었다. 북한의 태도를 시험해봤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되는 것을 보고 거부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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