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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기 드레스, 알까기...요상함 속엔 일말의 신선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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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중음악인들의 축제인 그래미 시상식이 13일 열렸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누가 무슨 상을 탈 것인가 만큼이나 흥미를 끄는 화두가 있었으니, 바로 레이디 가가의 시상식 패션이다. 지난해 이른바 ‘생고기 드레스’를 걸쳤던 레이디 가가는 올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엽기적 패션을 선보였다.

올해 시상식에서 그녀의 패션 컨셉트는 ‘알까기’. 이날 시상식장에는 웃통을 벗은 건장한 장정들이 알 모양의 가마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나타났다. 사람들은 굳이 그 안에 누가 들어 있는지 묻지 않아도 레이디 가가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밖에 이런 행위를 할 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네티즌들은 레이디 가가의 의상을 두고 “지난해는 생고기더니 올해는 계란이냐. 단백질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농담 섞인 논평을 하기도 했다. 보통의 연예인들은 시상식장에 들어가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각종 미디어와 짤막한 인터뷰를 하게 마련인데 레이디 가가는 알 속에서 아직 부화(?)되기 전인지라 누구도 그녀를 인터뷰할 수 없었다.

이 알까기 의상은 그녀의 축하 무대로 이어졌다. 무대 위에 오른 레이디 가가는 드디어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의 신곡 ‘Born This Way’를 열창했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레이디 가가는 자신이 무대에서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나 뭐라나<사진>.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그녀는 시상식에 오기 전 72시간 동안이나 그 알 속에 누워 있으면서 노래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레이디 가가는 가수라기보다는 행위예술가에 가깝다.

그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 요상하고 망측한 퍼포먼스 때문에 때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고백건대 일말의 신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섹시(sexy)’라는 컨셉트 외에는 그 어떤 개성도 찾아볼 수 없는 국내 여자 가수들의 천편일률적 모습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디 가가의 음악에도 ‘섹시’ 컨셉트가 어느 정도는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퍼포먼스는 “남자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내 식대로 하련다”는 당당함이 느껴져 좋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레이디 가가는 성적 소수자들 사이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고작 스물다섯. 예뻐 보이려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한창 바쁠 나이의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특이한 짓만 골라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게다가 시상식 이후 출연한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술과 마약, 담배가 없으면 곡을 쓸 수 없다”고 털어놓기까지 했으니 그녀는 참으로 특이한 이미지 메이킹 전술을 지녔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그녀의 성장 환경에서는 딱히 기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넉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만 하는 짓이 너무 유별나다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레이디 가가는 어딘가 학교 생활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가졌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내재된 끼를 숨겨야 했다고 한다. 그녀의 도발적 성향은 아무래도 그녀의 노래 제목(Born This Way)처럼 “타고나기를 원래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인가 보다.


김수경씨는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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