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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보다 생생히, 137억 광년 밖 우주 모습 관찰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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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06면

1 2019년 칠레에 세워질 거대 마젤란 망원경의 조감도. 2 새로 만들어질 마젤란 망원경은 15층 건물 높이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와 크기가 비슷하다. 3 마젤란 망원경에 사용될 7개의 반사경 중 처음으로 만들어진 반사경. 애리조나대학의 스튜어드 천문 유리 실험실에서 제작되고 있다. [카네기 천문연구소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동쪽으로 30여 분쯤 차를 달리면 해발 1742m 높이의 윌슨 산이 있고 정상엔 카네기 천문대가 있다. 지금부터 90년 전쯤부터 과학자 에드윈 허블은 이곳에 설치된 지름 252㎝ 후커 망원경으로 우주를 끊임없이 들여다봤다. 당시 최대 크기의 망원경이었다. 그는 1929년 스펙트럼 선에 나타나는 은하들의 이동이 적색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적색은 멀어진다는 뜻이므로 이는 우주가 팽창한다는 증거였다.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한다’는 ‘허블의 법칙’이 탄생한 것이다. 우주 팽창을 역으로 돌리면 출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빅뱅이었다. 빅뱅 이후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한다는 허블의 법칙은 당시 과학계를 지배했던 정상 상태 우주론에 철퇴를 가하는 인식의 전환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아버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휘청거렸다.
37년 역시 같은 장소인 카네기 천문연구소. 연구소 내 도서관에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이 모였다. 폭탄 맞은 듯 산발을 한 남성이 안경을 고쳐 쓰며 단언했다.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는 게 제 일반상대성 이론의 가정입니다.”
그러자 키가 크고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남성이 반박했다.
“제가 망원경으로 살펴본 결과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습니다.”
산발을 한 이는 아인슈타인, 다른 한 명은 허블이었다.
허블과 과학자들의 생각은 발전했다. 멀리 있는 우주를 관찰할 수 있으면 우주 팽창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8년 팔로마산 천문대에 지름 500㎝ 반사망원경이 설치되면서 허블은 더 깊이 탐사했다. 그러나 끝을 볼 수 없었다. 그는 53년 사망했다. 먼 우주를 직접 들여다본다는 천문학계의 꿈은 40년쯤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90년 4월 24일, 특별임무를 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솟구쳤다. 선체에는 우주의 기원을 밝히려는 희망을 담은 우주 망원경이 실렸다. 망원경 이름은 허블. 위대한 과학자 에드윈 허블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궤도에 안착해 지구 선회를 시작한 허블 망원경은 한 달 후 첫 관측사진을 보내왔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실패였다. 초점이 흐리게 번진 사진이었다. 50억 달러의 비용이 든 허블 우주 망원경에 대한 비난이 터져 나왔다. 과학자들은 원인 규명에 나섰다. 문제는 직경 2.4m의 반사경이었다. 반사경 제작을 위해 유리를 깎을 때 1.3㎜의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93년 이번엔 우주왕복선 인데버호가 다시 솟구쳤다. 허블의 오류를 교정하는 장치가 실렸다. 마침내 94년 1월 허블은 선명한 사진을 보내왔다. 이후 97년, 99년, 2002년, 2009년 몇 차례 수리를 거치며 생명을 연장한 허블 망원경은 지금도 매주 120기가바이트 분량의 자료를 지구로 보낸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우주에 대한 과학계의 시각을 바꿨다. 광대한 자료들이 모이면서 가상실험에만 의존한 우주이론들이 구체적으로 입증되기 시작했다. 100억~200억 년 사이로 막연히 추정되던 우주의 나이는 130억~140억 년 사이로 좁혀지다 137억 년 전으로 구체화됐다. 또 우주 팽창을 가속시키는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허블 망원경이 보내온 자료를 기초로 작성된 연구논문만 6000건이 넘는다.
그런데 허블 우주 망원경의 수명이 다하고 있다. 2014년까지 운용된 뒤 우주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허블이 기능 정지할 경우 지구로 추락할 것에 대비, 궤도를 조정해 잔해들이 바다로 떨어지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우주 탐사 임무는 새로운 우주 망원경인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과 임무를 교대한다.
그리고 지상에 설치되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과 다시 짝을 이뤄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 우주 망원경은 대기권 밖에서 아주 선명한 이미지를 보내온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제작·발사에 지금 화폐가치로 47억 달러가 들었다. 수리에 11억 달러가 추가됐다. 2015년 발사돼 허블을 대체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65억 달러가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큰 천체 망원경을 만들어 인류의 마지막 남은 미지의 세계, 우주를 들여다보려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프로젝트’ 예산은 7억 달러다. 지상 망원경이지만 반사경이 커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 10배 더 정확한 우주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예산은 10%, 효율은 10배다. 천문학 역사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을 초대형 프로젝트다. 허블이 과학적 열정을 바쳤던 카네기 천문연구소가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웬디 프리드먼 소장을 만났다.
-별을 보는 데 왜 7억 달러라는 큰돈을 들여야 하나.
“호기심 때문이다. 2000년 전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400년 전에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허블이 1919년 카네기 천문연구소로 오면서 이런 믿음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연구소 인근 윌슨산에 설치된 직경 2.5m 망원경으로 우리 태양계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또 천문학과 같은 기초과학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하게 응용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핵심 기술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자리 잡고 있다.”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프로젝트를 설명해 달라.
“총예산 7억4000만 달러를 들여 2019년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에 직경 25m인 세계 최대 망원경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카네기 천문연구소를 비롯해 하버드대·텍사스대·애리조나대 등이 참여하며 한국은 천문연이 10%의 지분(7400만 달러)을 투자했다. 애리조나대 로저 에인절이 아이디어를 냈고 이후에 카네기 천문연구소와 하버드대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GMT는 현재 어떤 단계인가.
“설계를 위한 디자인 단계에 있다. 6개의 반사경과 예비 반사경 1개 등 모두 7개의 반사경을 만든다. 부품들은 2019년까지 칠레에서 조립될 것이다. 제작비용은 2012년까지 조성을 마쳐야 한다.”
-GMT로 무엇을 밝혀낼 수 있을까.
“137억 광년 떨어진 우주를 볼 수 있다. 은하계 초기 모습이나 형성 과정에 대한 질문에 GMT가 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천문학은 기본적으로 타임머신을 타는 것과 같다. 거대 망원경으로 우주의 먼 곳까지 본다는 것은 결국 우주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처럼 멀리 볼 수 있나.
“GMT는 인간의 눈보다 2000만 배 더 빛에 민감하다. 허블 망원경보다 10배 더 선명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 떨어진 거리에 있는 켜져 있는 촛불을 관측할 수 있는 정도다. 또 321㎞(약 200마일) 밖에서 10센트 동전 크기의 물체를 확인할 수 있다.”
웬디 프리드먼 소장은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천체물리학 박사를 받고 84년부터 카네기 천문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카네기 천문연구소의 첫 여성 과학자로 2003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허블상수(우주팽창률)를 계산하는 연구를 주도했다.

카네기 천문연구소의 웬디 프리드먼 소장이 8일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박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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