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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교수 폭행 논란 … ‘도제 사회’ 그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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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SBS ‘스타킹’에 출연한 김인혜 교수. [TV 화면 캡처]

감정적 폭행인가, 도제식 교육의 그늘인가-.

 서울대 음대 김인혜(성악) 교수가 학생들을 상습 폭행했다는 진정서가 접수된 것과 관련해 서울대 측이 징계위원회 구성을 고심하고 있다. 서울대 교무처는 현재 김 교수가 수업 도중 배와 등을 때리고 머리를 잡고 흔드는 등 폭행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10여 명의 학생에게 받아놓은 상태다. 서울대는 지난 주말 언론 등을 통해 김 교수 폭행 의혹이 제기되자 징계위원회를 구성하려 했지만 17일까지 구체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명확한 가닥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교육의 특수성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대일 방식을 고수해 온 음악교육에선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각별하다. 서울 한 음악대학의 피아노 전공 교수는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는 학습 방식인 만큼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 경향이 다른 분야에 비해 강하다”고 말했다.

 또 성악은 다른 음악과 달리 몸을 쓰는 분야다. ‘지도’와 ‘폭행’의 선을 명확히 긋거나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서울대엔 지난해 11월 말부터 학부모·학생이 함께 제출한 진정서가 들어왔지만 교무처는 징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에 접수된 진정서는 모두 익명이고, 또 다른 피해자의 진술을 받기는 더욱 어렵다. 서울대 성악과의 한 학생은 “김 교수에게 피해를 보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누구에게 배웠다’는 식의 사사(師事) 관계가 중요한 것 역시 이번 사건 처리를 어렵게 한다. 서울대 음대의 한 졸업생은 “김 교수는 한국 성악계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한창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김 교수 제자라는 것이 음악인으로서 큰 발판인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생이 스승을 믿고 따르는 교육의 장점을 인정하는 입장도 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1980년대 이후 세계적 독주자들을 배출한 것도 이 같은 교육의 힘이라는 것이다. 음악계의 한 원로 연주자는 “서양의 연주자에게도 스승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유학 시험이나 국제 콩쿠르를 앞둔 학생들이 스승의 집에 살다시피 하며 레슨을 받는 것은 한국의 특수한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생활을 같이하는데, 교육과 비교육의 선을 정확히 그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편 김 교수는 “나에게 확인하지도 않고 언론에 진정서 내용을 흘렸다”며 학교를 상대로 법적 대응도 불사할 태세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자의 내한공연에도 예정대로 찬조 출연한다. 현재 김 교수가 출연 중인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측은 서울대 조사 결과를 지켜본 다음 향후 출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호정·강신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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