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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환과고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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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 5년(28) 11월조는 “왕이 국내를 순행(巡行)하다가 한 노파가 굶고 얼어 죽으려는 것을 보고, ‘내가 하찮은 몸으로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기르지 못해 노약자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나의 죄다’라면서 자신의 옷을 벗어서 덮어주고 밥을 밀어 먹였다”고 전한다. 유리왕은 유사(有司 : 담당 관리)에게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늙고 병들어서 자활할 수 없는 이를 위문하고 식량을 주어 부양하라고 명하는데, 『삼국사기』는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이를 듣고서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면서 “이 해에 민속이 즐겁고 편안해 ‘도솔가(兜率歌)’를 지으니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초”라고 전하고 있다. 노약자를 보살피자 이웃 백성들이 귀화하고, 도솔가를 지어 태평성대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환과고독이란 맹자(孟子)가 제(齊) 선왕(宣王)에게 ‘아내가 없는 늙은 홀아비를 환(鰥), 지아비 없는 늙은 홀어미를 과(寡), 늙어서 자식이 없는 노인을 독(獨), 부모 없는 아이를 고(孤)’라고 설명한 대로(『맹자』 『양혜왕(梁惠王)』) 하소연할 데 없는 사궁민(四窮民)을 뜻한다. 주(周) 문왕(文王)은 정치할 때 이 네 부류의 백성을 가장 우선했기에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기상이변으로 기우제(祈雨祭) 등을 지낼 때 제사만 올린다고 하늘이 감응하지는 않는다. 청(淸) 강희제(康熙帝) 49년(1710) 간행된 백과사전인 『연감유함(淵鑑類函)』 ‘청우(請雨)’조에는 기우제를 지낼 때 ‘억울한 죄수를 풀어주고 실직한 자를 서용할 것, 환과고독을 구휼할 것, 부역과 조세를 감할 것, 인재를 등용할 것, 간사한 자를 물리칠 것, 과년한 남녀를 결혼시키고 젊은 과부와 홀아비를 재혼시킬 것, 수라상의 반찬을 감하고 풍악을 갖추지 않을 것’ 등을 함께 시행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지상의 소외된 인간이 구제되어야 하늘이 감응한다는 뜻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논쟁이 한창이지만 별 감흥이 일지 않는 이유는 이들 사궁민(四窮民)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환과고독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서경(書經)』 『강고(康誥)』에 “주 문왕은 늙은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았다〔不敢侮鰥寡〕”고 전하고 있다. 중산층 이상의 힘 있는 표에 밀려 이들은 복지논쟁에서도 소외되는 느낌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부자는 괜찮지만/이 외로운 사람들이 애처롭다(哿遜븑人/哀此煢獨)”라는 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