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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무바라크 몰락 ‘생일상’ 받은 김정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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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69) 국방위원장이 16일 생일 잔칫상을 받는다. 평양의 관영매체는 연일 생일 준비 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정일 찬양도 한창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착잡한 심정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집트발 민주화 시위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뉴스 때문이다. 김정일은 30년 철권통치가 18일간의 봉기로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했을 것이다. 특히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다 축출된 무바라크의 몰락은 후계자 김정은(27)으로의 3대세습을 준비 중인 김정일에겐 충격일 듯하다. 더구나 무바라크는 김일성 주석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이 아니던가.

 이집트와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폭압적 정권유지 기구와 감시체제·정치범수용소 등을 갖췄다. 정규군 119만 명에 비정규 무력이 770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병영국가다. 반(反)무바라크 시위를 이끈 공로자 중 하나인 인터넷의 자유도 없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아직 이집트 시위 소식에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독재체제도 자유를 향한 민중의 의지 앞에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걸 역사는 보여준다. 북한을 이상적 사회주의 국가모델이라며 ‘김일성 따라 배우기’를 하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25년 철권통치를 하다 1989년 성탄절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공화국 수비대가 나를 지킬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결국 측근의 밀고로 잡혀 2006년 12월 사형됐다.

 독재정권의 말로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김정일 체제는 미래가 없다. 3대세습으로 김정일은 100년 왕국을 꿈꿀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견고했던 독재의 둑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집트 민중은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며 ‘키파야’(이제 그만 또는 충분하다는 의미)를 외쳤다. 그가 하야한 뒤에는 ‘마살라마’(잘 가세요)를 합창했다. 북한이 이의 재판(再版)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개혁·개방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영종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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