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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아이들 …] 실화·각색 사이 길 잃은 ‘개구리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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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1991년 대구에서 일어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의 비극을 그린 영화 ‘아이들….’ [프리랜서 주재범]


해결되지 않은 사건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영화 ‘아이들…’은 이른바 ‘3대 미제(未濟)사건 영화로 만들기’의 마지막 주자다. 경기도 화성연쇄살인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년)으로, 이형호군 유괴살인은 박진표 감독의 ‘그놈 목소리’(2007년)로 영화화됐다. 두 편 다 흥행도 잘 됐다.

 4년 간격을 정확히 지킨 ‘아이들…’은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이 소재다. 1991년 기초의원선거가 열린 임시공휴일 도롱뇽을 잡으러 산으로 간 초등학생 다섯이 감쪽같이 사라져 2002년 유골이 발견된 사건이다.

 ‘아이들…’의 전반부는 도발적이다. 실제 사건에 대해 제기된 많은 의혹 중 이 영화는 ‘한 아이의 부모가 유괴를 가장해 죽인 후 집에 암매장했다’는, 가장 황당한 것 중 하나를 가져왔다. 조작방송 때문에 지방으로 좌천된 다큐멘터리 PD 지승(박용우). ‘한 건’ 올려 재기하려는 그의 더듬이에 국립대 심리학 교수 우혁(류승룡)이 포착된다. 우혁은 사라진 아이들 중 종호의 부모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종호 엄마(김여진)가 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추적장치를 누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과, 사건 당일 종호 아빠(성지루)의 알리바이가 확실치 않다는 게 이유다.

 우혁은 수업시간에 ‘인지부조화(믿는 것과 현실이 충돌할 경우 심리적 불편을 덜기 위해 거짓된 사실을 믿게 되는 것)’를 얘기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세운 가설에 사실을 끼워 맞추려는 우혁의 인지부조화적 증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급기야 종호네 집 화장실을 푸게 하고 거기에 TV카메라를 들이대는 장면은 인간의 집착과 절박함이 엉킨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 하다.

 이들의 비이성적 행동에 겹쳐지는 건 종호 부모의 깊은 슬픔이다. 성지루와 김여진의 텅 빈 눈빛은 “그런 의심이 그 사람들(아이 부모들)을 두 번 죽인다”는 박 형사(성동일)의 대사와 더불어 여운으로 남는다. 이 영화가 미제사건 피해자에게 비극은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환기뿐 아니라 아동범죄에 공소시효를 둬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거리까지 준다면, 그건 상당 부분 두 배우의 깊은 연기 덕이다.

 전반부의 진중한 문제의식이 후반부 영화가 스릴러로 돌변하면서 흐트러지는 건 유감이다. ‘아이들…’은 유력한 용의자를 내세웠던 ‘살인의 추억’이나 범인의 실루엣과 목소리만 보여줬던 ‘그놈 목소리’와 달리 범인을 구체적으로 노출한다. 범인이 지승의 딸을 납치했다 돌려보내거나 소 도축장에서 범인과 지승이 육탄전을 벌이는 설정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이 영화가 실화의 무게감과 상업적 각색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헤아릴 수는 있지만, 영화가 인위적으로 두 토막이 난 아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수술 중 각성’을 소재로 했던 ‘리턴’의 이규만 감독이 연출했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글=기선민 기자
사진=프리랜서 주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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