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도 처음엔 야유 받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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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09면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은 세계 현대무용계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나폴레옹 3세 때 만들어진 이 1000석 규모의 시립극장은 피나 바우쉬를 비롯한 세계적인 현대무용가들이 초연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연간 450개가 넘는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매년 25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주한 프랑스문화원 파스칼 쥐스트 문정관은 “제작 편수나 공연 횟수, 소개되는 안무가 수준을 고려할 때 현대무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극장”이라고 소개했다.
이 극장에서 40년간 근무한 세르주 페이라(Serge Peyrat·78)가 한국을 찾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창단공연 ‘블랙박스’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그는 1968년부터 2008년까지 이 극장에서 조연출·배우·연출·조명감독·프로그램 선정위원 등을 맡아온,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살아있는 역사’다. 지금은 은퇴해 테아트르 비디-로산의 고문으로 있다. 1월 29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세계 현대 무용계의 산 역사 세르주 페이라

-테아트르 드 라 빌은 언제 변신했나.
“이곳은 원래 유명한 배우의 이름을 따서 사라 베르나르 극장으로 불렸다. 4월에 극장 리모델링을 결정해 6월에 건축가를 선정한 뒤 14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프랑스 행정 시스템상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마침 당시 파리 시장이 공석이었다(웃음). 무용은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어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객석도 경사식으로 개조했다. 조연출이었던 나는 초대 연출가였던 장 메르퀴르(Jean Mercure) 등과 함께 어떻게 새 극장을 운영해 나갈 것인지 1년 동안 회의만 하면서 의견을 조율했다. 그리고 68년 재개관했다.”

-회의 결과는.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현대무용·연극·클래식 음악·세계 음악 등 네 장르로 한정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전 세계 아방가르드 예술을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어떤 전략이었나.
“오후 8시 공연을 앞두고 오후 6시30분 시작되는 1시간짜리 공연을 새로 만들었다. 퇴근하자마자 ‘가볍게 공연 하나 보고 가자’는 풍조를 만들었다. 입장료는 5프랑이었는데, 당시 영화보다 싼 가격이었다. 간단한 식사를 위해 건물 1층에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극장에 식당이 만들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티켓 정책도 필요했을 것 같다.
“현대무용은 당시에도 생소했다. 그래서 연간 할인티켓을 만들고 연극 3편에 무용 1편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가 왔을 때도 객석은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티켓만 샀을 뿐 공연을 보러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부터 유명해졌나.
“시간이 필요했다. 피나 바우쉬도 처음엔 야유받았다. 하지만 현대 무용으로 차별화된 극장이라는 점이 점점 알려지면서 명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피나 바우쉬는 이곳에서만 초연을 했다. 5년쯤 지나자 관객이 모이기 시작했다. 재능 있는 안무가를 선정해 작품을 공동 제작해온 것도 일조를 했다.”

-작품은 어떻게 고르나.
“흥행 여부와 관계없다. 평론가의 글도 참고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원칙은 직접 무대를 보고 우리 극장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른다는 것이다. 절대 비디오로는 감상하지 않는다. 프랑스 안무가의 작품은 하나도 안 놓쳤다. 이제는 최고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또 있다. 절대 외부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내부의 판단으로만 결정한다. 제작 지원도 몇 차례 기회를 준다. 한 번 망쳤다고 바로 지원을 끊지는 않는다.”

-보통 몇 편의 작품을 보나.
“예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았다. 요즘은 1년에 150개에서 200개 정도의 작품을 본다. 지난주에도 3곳을 다녀왔다. 솔직히 5분만 보면 가능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봤다. 예전에는. 지금은 아니다 싶으면 휴식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왜냐고? 이젠 은퇴했으니까. 예전처럼 정치적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웃음).”

-낼모레 여든인데 피곤하지 않나?
“피곤? 신발이 불편하면 피곤하다(웃음).”

-테아트르 드 라 빌이 지닌 명성의 또 다른 원인은.
“내가 40년간 근무하면서 연출자는 두 번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도 85년 물러난 메르퀴르의 후임은 당시 행정 감독이 물려받았다. 덕분에 그가 만들었던 큰 틀의 전략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 현대무용에 대한 생각은.
“한국 무용수들의 실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이번 ‘블랙박스’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재주를 세계 무대에 보여주려면 좋은 안무가가 많이 필요하다. 또 단원들이 저마다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내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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