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와 공존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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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18면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도 해적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시저는 큰 몸값을 지불한 후 풀려나 해적을 응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왜구나 중국의 해적은 큰 골칫거리였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처럼 영화나 소설에서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바이킹도 사실은 중세 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근거지로 한 해적들이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영국이나 스페인 왕실의 비호를 받는 해적들이 아프리카나 서인도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은근히 나라 재산을 불려줬다. 스페인 치하의 필리핀, 동남아시아에도 덴마크·포르투갈·네덜란드의 해적들이 출몰했다. 해적들은 국가의 통치를 받지 않기 때문에 멋대로 배나 해안 지역을 공격하며 납치와 강도질을 하지만, 자기들 내부에서는 상당히 조직적이고 민주적으로 행동한다. 나름의 강령과 원칙, 자기들만 아는 구호와 노래도 있다. 마치 조폭들이 내부적 의리로 결속돼 있는 것과 비슷하다. 조폭 영화처럼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해적 영화나 소설들이 그런대로 낭만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요즘 해적으로 세계의 골칫덩이가 된 소말리아는 아라비아 반도를 마주보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찍부터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다. 고대에는 고유한 문자도 있었고, 이집트 등과 교류하면서 나름의 문명을 발전시킨 안정된 이슬람 국가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양 열강의 각축과 내전을 겪는 동안 무정부 상태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법과 정부가 시원찮으니 연해에 외국 선박들이 쓰레기들을 함부로 버리고, 무분별한 어획으로 수산 자원의 씨를 말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자구책으로 어부, 해양 기술자, 군인들이 해적이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해적들은 스스로를 도둑이나 강도가 아닌 ‘국가 자원(自願) 해안 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라 칭한다. 실제 행동은 흉악한 납치강도범이면서 말이다. 그나마 2010년 말 모하메드가 총리가 되면서 해적 숫자가 현저히 줄고 있는 와중에 한국 선박들이 납치되는 일이 생겨 더 안타깝다.

근대에 들어 서양 열강이 침략하기 전까지 고유한 생태와 문화를 유지해 오던 아프리카는 노예무역이 시작된 이후 사회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소말리아 해적은 그런 아픈 역사의 유산이자 아노미 상태에 빠진 아프리카의 병적 징후다. 서방국가가 남긴 무기가 소진될 때까지 아픔과 혼란은 계속될 것인가. 오륙십 년 전에는 우리도 아프리카처럼 가난했다. 괘씸한 해적에 대한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 등지의 저개발 국가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지 고민할 때가 아닐까 싶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에 크게 선심 쓰는 척하며 많은 자원과 기회를 선점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채널은 그에 비해 너무 협소하고 국민이나 정부의 관점 또한 근시안적이다. 민속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슬픈 열대’에서 쓴 것처럼 “원주민들은 정의를 모르는 미개인”이라 말하며 정작 자신들은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서구식의 시대착오적 오만함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프리카나 다른 저개발 지역 국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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