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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세습에 분노 “무바라크 키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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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7일(현지시간) 이집트 동북부 수에즈에서 시위대가 경찰 진압차량을 포위해 공격하고 있다. 경찰 차량에는 시위대의 투석으로 생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수에즈 AP=연합뉴스]


금요일인 28일 오후 5시(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시내의 모한디센 지역. 1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83) 대통령의 30년 장기집권을 끝내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주거지를 지나며 시위대는 금세 2만 명 이상으로 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행진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시위대를 향해 손을 흔들고 휘파람을 불었다. 일부 주민은 적·백·흑 삼색의 이집트 국기를 흔들었다.

시위대는 아랍어로 “무바라크 키파야(충분하니 이제 물러나라는 뜻의 아랍어)”, 영어로 “다운, 다운, 가말(물러나라, 물러나라 가말)”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2005년 시작된 세습 반대 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가말(Gamal·48)은 무바라크의 차남으로 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다. 무바라크가 오는 9월 대선에서 6선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할 의사를 드러내면서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을 ‘분노의 금요일(Friday of Wrath)’이라 불렀다. 금요일은 이슬람 세계에선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모여 예배 보는 날로, 공휴일이다. 이날 예배를 마친 주민들은 줄 이어 시위에 참가함으로써 장기 집권과 권력 세습 시도를 해온 무바라크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날 카이로는 물론 수에즈·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집트 정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무바라크는 이날 군 투입을 결정했다고 국영TV가 보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8일 시위에 참가한 뒤 가택 연금됐다. 2005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그는 전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귀국했다.

 모한디센에서 만난 20대 시위자 이스마일은 “이번 시위는 고문·가난·부패·실업에 반대하는 혁명”이라고 말했다.  

엘바라데이와 지지자들은 카이로 한 이슬람사원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의 물대포 세례를 받고 흠뻑 젖은 채 1시간가량 묶여 있었다. 알자지라TV는 시위대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관저에서 가까운 곳에 모여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IAEA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던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며 “정권 교체를 이끌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8000만 인구에 중동 최대 군사력을 갖춘 이집트는 ‘아랍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다. 정변이 일어나면 거대한 파장으로 세계질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유튜브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정치·경제 개혁이 이집트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 왔다”며 무바라크를 압박했다.

 카이로 거리에서 만난 이집트 시위대는 20대 젊은이가 주축이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4월6일운동’도 청년 단체다. 이들은 휴대전화와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시위를 확산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27일 오후부터 전국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접속이 끊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3명이 숨지며 사망자가 7명으로 늘었다. 100명 이상이 다쳤고 1200여 명이 체포됐다. 경찰은 28일 시위 참가를 선언한 최대 야권단체 ‘무슬림형제단’의 지도급 인사 20명 이상도 체포했다.

◆마그레브·마슈레크=마그레브는 ‘서쪽’ 또는 ‘해 지는 곳’이란 뜻의 아랍어로 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 등 아프리카 북서 지역을 뜻한다. 마슈레크는 동쪽 또는 해 뜨는 곳으로 이집트·시리아 등 중동지역을 말한다.

카이로=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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