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연주회서 새들의 대화 엿듣는 상상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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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31면

우리는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울음-소리’라고 합니다. 언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해도 개가 ‘짖는다(bark)’는 표현이나 새가 ‘지저귀다(twitter)’는 표현 외에는 일반적으로 모든 동물에게 ‘운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추측할 수 있듯이 이는 철저히 인간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울음소리는 서로와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 행위’일 테니 말입니다. 단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뿐이겠지요.

10여 년 전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는 개미의 페로몬을 면밀하게 리서치해 그들의 표현방식을 읽어내 마침내 개미와의 대화에 성공하는 인간이 등장합니다. 마치 실현 가능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장면과 달리, 일반적으로 인간이 하는 개미 연구는 그 습성과 생활양식에 국한되지요.

절대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동물 울음소리처럼 인간이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 한계를 지닌 또 다른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음악은 다른 차원의 언어로써 인간의 감정을 때로 언어보다 더욱 적합하게 표현해내는 수단입니다. 현대 서양음악의 모태 격인 종교음악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단순히 말로 신을 찬미하는 것이 벅차 음악을 사용해 그 감흥을 확장시킨 것이 바로 교회음악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감정의 극한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음악과 마주합니다. 마치 기분이 좋아졌을 때 자연스레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 대중이 열광하는 가요, 즉 노랫말이 있는 음악도 그 원리는 같습니다. 감정을 잘 표현한 곡조가 덧붙여진 음악의 노랫말은 그냥 말보다 더 큰 공감과 감동을 야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노랫말이 없을 때는 조금 다릅니다. 아무런 ‘말’ 없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감흥을 연출해내는 기악은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작곡가는 똑같은 감흥을 떠올려 곡을 썼을지라도 노랫말이 없기 때문에 청자(聽者)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작곡한 것이 아니거나, 특정 대상을 묘사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서양 고전음악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양 고전음악의 주류가 이처럼 특정적 표상이나 관념과 직접 결부되지 않고, 스스로 그 법칙을 지녀 음악 그 자체에 보다 집중하는 기악, 즉 ‘절대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는 인간이 개미의 대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처럼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론 작곡가, 곡, 그리고 연주에 대한 이해일 것입니다.

작곡가나 곡에 대한 이해는 비교적 접근이 쉬운 ‘정보’에 속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에 가깝습니다. 마치 개미에 대한 표상적 정보는 전혀 다른 개체인 인간도 무한정 수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작곡가가 느꼈을 진짜 감정과 그것을 지배하는 무의식 세계는 끝도 없이 파고들 수 있겠지만요.

그러나 연주에 대한 이해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보도 지식도 아닙니다. 언어와는 달리 그 의미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고, 같은 곡이라도 연주하는 사람 수만큼 표현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연주에는 음향학적인 미가 존재합니다.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소리에 말초신경이 자극받아 희열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음량·속도·감정 등을 조절하는 기술이 잘 조화되면 충분히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연주가가 이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대부분의 청자가 이것을 즐기기 위해 음악을 듣습니다.

자, 연주회에 오셔서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자 하시는 여러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런 음악감상을 통해 정서를 고양하고 즐거움을 향유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새의 지저귐을 그저 예쁜 울음소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여기는 화려하고, 이 부분은 경건하며, 저 부분은 정열적이구나…. 물론 이런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그 연주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더한다면 새의 대화를 엿듣는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것 같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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