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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광장 오페라하우스

중앙일보

입력

천안문 광장의 인민대회당 옆 10만㎡에 연건평 12만㎡의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선다. '국가 대극원(大劇院)'으로 불릴 이 건물은 중국 공산당이 40년 넘게 추진해왔던 숙원사업이었다.

1958년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는 중국건국 10주년(59년)을 기념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10대 건축물을 짓겠다는 포부를 세웠다. 인민대회당, 혁명.역사박물관 등이 지어졌으나 국가 대극원 등 서너 채는 이제껏 손도 못댔었다.

그 이듬해부터 몰아친 대기근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초의 부지는 40년 넘게 공터로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짓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마침내 중국은 이 건물의 설계도를 확정했다. 2000년 4월 착공해 2003년 3월에 개원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공사비는 4억~5억달러.

지난해 7월 천안문 광장의 혁명.역사박물관엔 세계 각국에서 공모(公募)에 응한 44장의 설계도가 전시됐다.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다.

국내와 홍콩에서 24개, 해외에서도 20개의 응모작이 왔다. 이중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된 프랑스의 폴 앙드레의 작품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베이징(北京), 아니 중국의 얼굴을 바꿀 만큼 파격적이다.

중국인들은 대극원이 중국적 특색을 지니고 자금성이나 인민대회당 등 주변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앙드레의 설계는 전혀 딴판이다. 호수 같은 커다란 풀 안에 진주 모양의 대극원이 들어앉는 환상적인 모습이다. 대극원은 투명한 터널을 통해 호수를 건너가야 모습을 드러낸다. 외관은 유리와 티타늄으로 장식되고 호수 주변엔 푸른 녹지가 형성된다.

베이징의 황금 같은 토지를 물과 나무로 허비한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일부에선 주변의 자금성이나 인민대회당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드골 공항의 확장공사와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신공항을 설계한 건축가 앙드레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대극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이 꿈과 허구의 나라에 왔다고 믿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는 것이다.

2천5백석의 오페라하우스, 2천석의 콘서트홀, 1천2백석의 중국 경극(京劇) 홀, 3백~5백석의 현대연극 극장 등 4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뉘는 대극원은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게 하는 특별한 장소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도대체 '중국적'이란 게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가장 중국적인 게 세계적인 게 아니라 가장 세계적인 게 곧 가장 중국적이 될 수 있다는 반격이다. 앙드레의 작품을 최종 결정한 것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었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21세기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각오와 자신감 때문이었다는 것. 명(明) .청(淸) 6백년간은 자금성이, 중국건국후 50년간은 천안문 광장의 스탈린식 건축물이 베이징을 상징해왔다.

그러나 21세기는 개방과 독창성을 나타내주는 초현대식 건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이번 공사는 지난 77년 마오쩌둥(毛澤東) 기념관 건축 이래 베이징 최대의 공사다. 중국 당국은 이를 위해 주변의 1천7백가구를 철거하기로 하는 어려운 결정도 내렸다.

해외 각국에서 건설자금을 찬조하겠다는 제의도 많았지만 문화의 유산은 "우리 힘으로 세우겠다"는 각오로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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