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반역의 시대 … 쉬베이훙, 일본으로 사랑 도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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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29면

1953년 6월 6일 병중의 쉬베이훙은 중국인들이 항미원조라고 부르는 한국전 참전 지원군들에게 보내는 말 그림을 그렸다. 3개월 후 사망했다. 김명호 제공

쉬베이훙은 장메이성의 집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장메이성의 둘째 딸 탕전(棠珍)과 스칠 때가 많았다. 자태가 고왔다. 안 보는 척하며 힐끔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00>

장메이성과 쉬베이훙은 한번 앉았다 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탕전은 엄마와 함께 문틈에 귀를 들이대고 안에서 나누는 얘기들을 가끔 들었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지만 쉬가 다녀간 날은 밤잠을 설쳤다. 나이는 20을 갓 넘었지만 아버지보다 아는 것도 많고 붓글씨도 더 잘 쓰는 것 같았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약혼자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당시 탕전의 약혼자는 영어 기말시험 시간에 여학생 답안지를 커닝하다 들켜서 정학 중이었다. 살맛이 안 났다.

장메이성은 쉬베이훙이 올 때마다 밥을 먹여 보냈다. 새 옷을 입은 딸이 음식접시 들고 들어와 털썩 앉으면 흐뭇해했다. 빼어난 고전학자였지만 남녀문제에는 좀 둔한 편이었다. 젊은 두 사람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쉬베이훙은 탕전에게 비웨이(碧微)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줬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새로운 이름을 선사하는 습관의 시작이었다. 수정반지 두 개를 구입해 ‘悲鴻’과 ‘碧微’라고 새겼다. ‘碧微’라고 각(刻)한 반지를 항상 끼고 다녔다.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미래의 애 엄마”라며 웃었다. 장메이성 부부에게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비웨이는 방에 들어가 퉁소를 불었다.

캉유웨이는 쉬베이훙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38년의 나이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기

쉬베이훙은 캉유웨이를 찾아가 속내를 털어놨다. 캉유웨이는 모순 덩어리였다. 봉건예교의 신봉자였지만 연애지상주의자였고 실천가였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같이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며 가출시킬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대견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너라면 프랑스로 튀겠다. 뒷일은 생각하지 마라. 될 일도 안 된다”고 말했다. 캉유웨이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일러줬다.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었다. 끝으로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계절도 중요하다. 꽃피는 봄이 제격이다”라며 앙천대소(仰天大笑)했다.

명지대학에서 쉬베이훙의 유학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소문을 들은 장메이성은 온갖 요리를 차려놓고 청년 예술가의 앞날을 축하해줬다. 영문을 모르는 탕전은 머리가 복잡했다. 쉬의 손가락에 눈길이 갔다. 여전히 ‘碧微’라고 새긴 반지를 끼고 있었다.

장씨 부부가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 일부를 들고 나간 틈에 쉬베이홍이 간단히 말했다. “내일 누가 올 테니 그 사람 말을 들어봐라.”

다음날 품위 넘치는 중년부인이 캉유웨이가 보냈다는 선물을 들고 왔다. 탕전에게 “외국으로 떠날 청년이 있다. 함께 가고 싶어한다”며 의향을 물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탕전의 볼이 발그레해지자 쪽지를 쥐여줬다. 회답을 받은 쉬베이훙은 친구들에게 출국날짜를 속이고 잠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치열해지자 상하이와 유럽을 오가는 배편이 잠시 중단됐다. 캉유웨이는 우선 일본행을 권했다. 쉬베이훙은 나가사키행 선표를 두 장 구입했다.

1917년 5월 13일 밤 장메이성 부부는 고향 후배가 보내준 경극 초대권을 들고 집을 나섰다. 돌아와 보니 딸의 유서가 있었다. 그제야 머리에서 뭔가 반짝 하는 게 있었다. 같은 시각, 캉유웨이는 쉬베이훙과 장비웨이의 도망을 축하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사생입신(寫生入神)’이라는 휘호를 미래의 대화가에게 선사했다.

상황을 파악한 장메이성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막아버렸다. 상하이 신보(申報)에 부고를 내고 관에 돌을 넣어 장례식까지 치렀다.

20세기는 성공한 반역자들의 시대였다. 툭하면 전통 타령이나 해대는 사람들은 세상에 쓸모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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