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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어학연수 주의보 … 유학원 ‘배짱 출국’이 화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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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필리핀에서 외국인 학업허가증(SSP)을 받지 않고 영어 연수를 하다가 적발돼 여권을 빼앗겼던 한국인 초·중·고등학생 113명 중 1차로 단속됐던 75명에 대해 14일 필리핀 당국이 여권을 돌려주기로 했다고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밝혔다. 그는 "남은 학생들도 곧 여권을 돌려받기로 필리핀 측과 합의했다”고 전했다.

필리핀 당국의 이 조치와 체류기간 연장으로 학생들은 이달 31일까지 필리핀을 떠나면 된다.

 학생들은 한국인 이모씨가 모집한 겨울방학 영어연수 캠프에 약 200만~300만원가량의 비용을 내고 참가했으나 한화 약 15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내고 발급받는 외국인 학업허가증을 받지 않아 이민법 위반 혐의로 7일 여권을 압수당했다. 학생들은 1월 초 필리핀에 도착해 마닐라에서 차편으로 약 2시간 떨어진 바탕가스시 레메리에 위치한 ‘판타지 월드 리조트’에서 숙식하며 영어 교습을 받아왔다.

외국인 학업허가증은 유학 비자와 같은 것으로, 한국 학생들은 무비자 상태로 필리핀에 체류한 셈이 됐다. 주필리핀 대사관 관계자는 “(이씨가) 필리핀 당국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3주간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고 3000페소(한화 약 7만5660원)의 벌금을 내면 50일까지 체류 연장이 가능한 점을 악용해 학생들을 ‘배짱 출국’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의 귀국 문제에 대해 “1월은 필리핀에 어학연수·휴가차 오는 한국인이 많아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워 당장 출국이 힘든 학생들을 위해 31일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필리핀 측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여권을 압수당한 후 학생들은 한국인 인솔자 보호 아래 숙소에서 생활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필리핀에선 리조트를 영어학원으로 개조해 한국 학생들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대사관 측의 현지 조사 결과 학생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은 없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필리핀 어학 연수의 경우 유학원이 필리핀 당국에 내야 하는 돈을 제대로 내지 않고 가로채는 불법 행위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며 “이번 경우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수생을 모집한 이씨는 필리핀인과 동업해 만든 ‘알폰소 나사렛 학원(Nazareth Institute of Alfonso)’ 소속으로 이번에 한국인 학생들은 독자적으로 모집했으며, 이에 반감을 품은 필리핀 동업자가 제보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외교부 관계자는 전했다.

 이모씨를 포함한 14명의 유학원 운영자들은 필리핀 당국에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이민청 외국인수용소에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의 경우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로 규제를 할 수 있으나 유학원의 경우 자유업으로 분류돼 국세청에 신고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어 편법이 난무하는 실정”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학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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