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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중 회장 대행 배경·파장

중앙일보

입력

'오너는 곤란하지 않느냐' 는 정부 한 마디가 확정 단계이던 전국경제인연합회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작업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중도 퇴진한 김우중(金宇中)회장의 후임으로 '회장단 중 한 명' 을 선출한다는 전경련 방침에 대해 정부가 '오너는 곤란하다' 는 입장을 보이면서 상황이 1백80도 달라진 것.

이에 전경련은 내년 2월까지 '김각중 회장 대행체제' 라는 대안을 응급책으로 제시했지만 전경련측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 오너 회장 선임이라는 원칙이 '관(官)의 입김' 으로 좌절된 것으로 알려져 후유증이 예상된다.

◇ 반전을 거듭한 회장 선출〓지난달 초 김우중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장단은 차기회장으로 현대 정몽구(鄭夢九)회장을 추천했고, 鄭회장도 '회원들이 원한다면' 이라는 전제 아래 수락 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가닥이 순조롭게 잡히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고위 경제관료가 전경련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며 상황이 급반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5대그룹 오너 불가론' 이다.

내용인즉 ▶5대 그룹은 연말까지 부채비율 2백%를 맞춰야하는 등 구조조정 과정인데다 ▶오너가 맡을 경우 전경련이 재벌 이익만 대변하는 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윤철(田允喆)공정위 위원장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반개혁적 태도를 보여온 전경련의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는 의견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는 차기 회장 후보로 몇몇 비오너 경제계 인사등의 이름까지 거명했으나 전경련은 '재계 친목 모임인 만큼 회장단이나 원로.고문단에서 맡아야 한다' 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정부의 반대 기류가 감지되자 회장 선임 실무간사를 맡은 손병두 부회장이 지난 주말부터 회장단을 일일이 방문, 대안 모색에 나섰다. 결국 전경련은 2일 임시 회장단 모임을 갖고 차기 회장 선임 자체를 내년으로 미루기로 결론을 냈다.

현대측도 구조조정과 기아정상화에 바쁘다는 점을 들어 전경련측에 회장직 고사 입장을 다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불가피한 후유증〓우여곡절 끝에 전경련이 '김각중 회장대행 카드' 를 택했지만 외부 입김에 영향받은 전경련 회장 선출 연기는 큰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당장 민간 경제계의 대표임을 자임해왔던 전경련의 위상과 영향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게 재계의 관측이다.

실제로 전경련은 지난 81년 당시 서슬 퍼렇던 신군부로부터 회장 교체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과감히 뿌리치는 등 외압에 굴하지 않았다는 전력을 들어 민간 경제계의 구심점임을 자부해왔다. 때문에 회장 선출이 비록 연기됐지만 내년 초 순조롭게 차기회장을 뽑을 수 있을 지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재계의 관계자는 "정부가 산하기관도 아닌 민간경제단체장의 선임 문제까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전경련 회장 선임에 외부 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큰 후유증으로 남을 것" 이라고 말했다.

孫부회장은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후보들이 모두 고사해 대행체제를 만든 것이지 정부등 외압은 전혀 없었다" 며 "앞으로도 전경련이 외압에 굴복하는 일 등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민병관.김동섭.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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