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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지의 장기집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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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대안이 없어.”

지난해 12월 하순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구내식당에서 출입기자단 송년회가 열렸다. 유인촌 장관도 함께했다. 송년회가 끝나갈 무렵 “국립발레단장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유 장관에게 슬쩍 물어봤다. 당시 최태지(52) 국립발레단장은 2010년 말로 임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최씨를 유임시키거나 새 사람을 뽑아야 했다. 임기가 고작 열흘도 남지 않았지만, 후임자 발표가 없어 뒷말이 많았다. 유 장관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최 단장 오래 해서, 가능하면 딴 사람이 하면 좋겠는데, XXX는 깜냥이 안 되고, XXX는 또 좀 그렇고…. 그래도 최 단장이 일은 잘하잖아. 인맥도 넓고.”

유 장관의 고민은 납득이 됐다. 사실 최 단장이 오래 하긴 했다. 국립발레단장 임기는 3년이다. 그는 1995년 처음 단장이 됐고, 한 번 연임해 6년간 재임했다. 이후 한동안 떠나 있다가 2008년 컴백, 3년간 했으니 도합 9년간 단장을 한 거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아니 임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예술기관장을 두 번 연임하며 9년이나 했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유 장관은 지난해 12월 30일, 최 단장을 또다시 유임시켰다.

“자리가 사람 만드는 거지. 나도 시켜봐, 최태지만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인사의 핵심은 “누굴 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최태지가 더 하느냐 마느냐”였다. 최 단장의 역량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였다. 지난 3년간에도 출연수당을 차등 지급하는 등 실력 위주의 대우로 단원의 경쟁력을 배가시켰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나 롤랑 프티와 같은 세계적 안무가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아직 미흡한 수준이지만 ‘왕자 호동’과 같은 창작 발레를 만든 것도 업적이었다. 걸림돌은 단 하나 “너무 오래 해 먹는 거 아냐”라는 반발 심리였다.

최 단장뿐이랴. 누군가 어떤 공직을 오래 하는 것에 대해 우린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다. 왜 그럴까. 오래 하면 부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래 해 먹은 이들이 자신만의 커넥션을 구축해 장난질을 쳐온 걸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군부 독재 시대를 거쳐오면서 갖게 된 사회적·집단적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도 작용했을 게다. 오래 하는 건 곧 부정이요, 그걸 막기 위해 온갖 보완 장치를 마련해 왔다. 심지어 대통령도 한 번밖에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시스템이 우선”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온 건,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브리지토 르페브르는 1995년 예술감독에 올라 지금도 하고 있다. 16년째다. 영국 바비칸센터의 존 투사는 12년간 관장을 했으며, 러시아 말리 극장의 레프 도진 예술감독은 28년째다. 유럽에서 10년 넘은 예술기관장은 너무 흔하다. 해외 선진국이 하니 우리도 무조건 따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래도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정착됐으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세분화돼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라면, “오래 했으니 무조건 안 돼!” 같은 말을 넘어설 때도 됐다. 어설픈 아마추어 백 명 보단 권위 있는 전문가 한 명이 훨씬 낫다.

최 단장은 “이번 임기엔 국립발레학교를 꼭 창설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그래서 그 다음에도 ‘대안이 없는’ 사람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젠 우리도 머리 희끗한 원로 예술가의 아름다운 퇴장을 볼 때가 됐다. 사람을 믿을 때가 됐다.


최민우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다.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 어워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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