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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위 주자 모두 무너져 … 박근혜 이 징크스 깰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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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호 06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묘년이 밝으면서 대선 예비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은 2012년 12월 19일. 2년이 채 남질 않았다. 올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후보 명단에 누가 이름을 올릴지 결정될 것이다. 여야의 주자들은 암중모색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섰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띄우면서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불이 붙었다. 중앙SUNDAY가 각 진영이 그리는 동상이몽 대선구도의 핵심 포인트를 짚어봤다.

2012년 대선 레이스 … 이것을 주목하라

1이회창·이인제·고건 대세론 모두 깨져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선후보 0순위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여야 잠룡들의 여론 지지도가 한 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는 사이 박 전 대표는 줄곧 30%를 넘나드는 지지도를 유지해왔다. 말 그대로 ‘박근혜 대세론’이다. 문제는 최근 한국정치사에서 대세론이 끝까지 유효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회창 대세론이 그랬고 이인제 대세론 또한 그러했다. 당권 경쟁에선 지난해 10·3 민주당 전당대회 초기에 형성됐던 정세균 대세론도 맥없이 무너졌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왼쪽에서 둘째) 등 지도부가 1일 오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단배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을 2년 앞둔 2005년 말 대선후보 지지도 1위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아닌 고건 전 총리였다. 하지만 선두자리는 몇 달 만에 뒤집혔다. ‘대세론 필패론’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박왕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대표는 “대세론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유권자들에게 정체돼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신선함이 떨어지게 되고 낡은 과거의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기 십상”이라며 “국민들 마음속에 피로감이 쌓이면 자연스레 새로운 것을 찾게 되면서 대세론이 위기를 맞곤 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모름·무응답 비율이 계속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당내 예선을 싱겁게 끝내기보다는 친이계 대표주자와 제대로 된 승부를 벌이길 바라고 있다. 이를 통해 전투력도 쌓고, 검증 과정도 거치며, 나름의 경선 드라마도 만들면서 본선에서 힘을 받아가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친박계의 한 3선 의원은 “마라톤도 홀로 멀찍이 앞서가면 자기도 모르게 느슨해지고 페이스를 잃기 쉽다”며 “그러다가 35㎞쯤에서 역전당하면 다시 따라잡기 힘들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 상한선이 분명하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여권 내부의 대항마가 마땅찮고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도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걸 보면 ‘확장성 부족’이란 암초에 걸려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론도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 정도면 높은 것 아니냐”며 “그간 준비한 정책을 하나 둘 선보이며 본격 행보에 나서면 눈에 띄게 지지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박 전 대표 측이 친이계 의원들 포섭에 공을 들이는 것도 여권 성향 지지표를 끌어모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란 해석이다.

대세론 필패론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전략은 ‘정면돌파’로 모아지고 있다. 묵묵히 갈 일을 가며 당당히 심판받겠다는 자세다. 지난달 20일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27일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를 연 것도 ‘예정된 스케줄대로 대선 레이스를 펼쳐가겠다’는 박 전 대표의 의중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표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은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틀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 친이계 단일후보 가능할까
박 전 대표가 상수(常數)라면 친이계 단일후보는 아직 미지수다.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얘기다. 친이계에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지난해 7·14 전당대회 때 대의원 분포는 친이계가 65%, 친박계가 35%쯤 됐다. 당 대의원은 쉽게 바뀌지 않는 만큼 내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도 이 비율이 거의 그대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그 때문에 친이계가 똘똘 뭉쳐 결집할 수만 있다면 누가 후보가 되든 박 전 대표를 누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일단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앞서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지난 연말 무상급식을 놓고 서울시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과 각을 세우며 승부수를 띄웠다. 오 시장 주변에서는 이미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약점은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점이다. ‘리틀 MB(이명박)’라는 이미지도 당장은 득이 될지 모르지만 나중엔 되레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제때 치고 나온 것이란 평가도 적잖다. 조금 무리하다 싶더라도 무상급식에 이어 제2, 제3의 정책 승부수를 던진 뒤 자기 실력으로 난관을 뚫고 나간다면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김 지사는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스터디그룹을 가동하고 외곽조직도 꾸리며 꾸준히 전열을 정비해왔다. 지난달 무상급식 논란 때는 도의회와 타협하며 곧바로 오 시장과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오 시장에 비해 당내 기반도 나름대로 구축해놓았고 여권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과 민중당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인연도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친이계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친이계 재선 의원은 “지난해 8월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 후 친이계 무게 중심이 김 지사 쪽으로 급속히 쏠렸을 때 확실히 올라섰어야 했다”며 “이후 대통령과 거듭 각을 세우는 모습에 친이계 내부에 회의감이 퍼진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선 재야 운동권 출신인 김 지사가 보수층을 잡으면서 나름대로의 좌표를 잡는다면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준표 최고위원과 정몽준 의원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친이계에서 확고한 주자가 떠오르지 않으면 대안을 찾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박 전 대표에 대항할 친이계 단일후보 출현의 또다른 변수는 이재오 장관이다. 허리를 90도를 숙여 인사하는 ‘이재오 인사’로 복귀한 뒤 지난해 하반기 여권 정국을 사실상 주도한 그는 올해도 ‘객토론(喀土論)’ 등을 설파하며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킹 메이커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하면 힘이 더욱 쏠릴 수 있다. 대통령이 믿는 ‘동지’라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여차하면 직접 주자로 나설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도 관심거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정치에 자신감이 붙었다”며 “다음 대선 때 뒷짐만 지고 있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공정한 대선관리자 역할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현직 대통령이 후임자를 낙점하긴 힘들더라도 특정인을 비토할 힘은 있다’는 정치권의 정설도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박 전 대표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최근 여의도 주변에 돌고 있는 ‘MB-박근혜 추가 회동설’도 이런 분위기와 역학관계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다.

3 인물난 야권, 제2의 노무현 나올까
여권이 인물 대결이라면 야권은 판·구도·진영의 싸움이다. 이렇다할 ‘스타’가 없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인물군으로 승부를 걸려면 후보 단일화가 필수다. 연대는 단일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야권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연대에 성공하며 승리의 가능성을 맛봤다.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은 지방선거와 전혀 다를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만만찮다. 하지만 이미 물밑에선 연대를 향한 움직임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연대를 넘어 아예 통합과 합당으로 가자는 주장도 세를 얻고 있다.

제1의 변수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다. 그가 ‘박근혜 대세론’을 잠재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만약 그 가능성을 입증한다면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세력과 야권 성향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 이 경우 2012년 범야권 대선후보는 그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과연 그럴 수 있느냐다. 지난해 10월 당 대표가 된 이후 석 달간 그는 ‘손학규식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MB 정부의 프레임에 갇혀 장외투쟁만 반복했다. 관건은 앞으로다. 당장 1월부터 그만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만약 올 하반기까지 손 대표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또 다른 주자를 내세울 공산이 크다. 지난 대선 때 후보로 나서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 직전 당 대표를 지낸 정세균 최고위원, 제2의 노풍을 기대하는 천정배 최고위원, 486의 맏형 격인 이인영 최고위원 등 현 지도부와 한명숙 상임고문이 후보로 꼽힌다. 일각에선 또다른 ‘486 후보’로의 세대교체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차차기 후보군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은 범야권의 상수다. 그가 노리는 카드는 비(非)민주당 단일후보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과의 소통합, 중통합을 통해 진보 진영 단일후보가 된 뒤 민주당 후보와 마지막 1대1 대결을 벌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관건은 친노무현 지지층이란 울타리를 넘어 얼마나 지지세를 확장하느냐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설사 대선 본선에 진출해도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범야권 단일후보가 됐지만 본선에선 한나라당 김문수 지사에게 패했다. 민주당 등 야권 내에 유 원장 비토세력이 상당하다는 것도 부담이다. 그의 변신 노력과 결과는 올해 가장 흥미로운 관전거리가 될 전망이다.

진보진영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진보 색채의 여러 사회단체가 모여 ‘진보대통합 시민회의’를 출범시킨 게 대표적이다. 내부에서는 국민참여당까지 아우르는 대통합론과 진보 진영 독자후보론이 팽팽한 상태다. 대통합론은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진보세력이 후보를 낸 뒤 막판에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는 방식이고 독자후보론은 민주당·국민참여당과 나머지 진보 진영이 각각의 후보를 낸 뒤 원샷 또는 투샷 경선을 치러 범야권 단일후보를 내자는 전략이다.

무소속의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범야권에서 다크호스로 꼽힌다. 청와대가 내심 껄끄러워하는 야권 후보 중 한 명이 김 지사다. 경남이란 지역적 기반과 친노 성향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충남과 강원도지사가 지원에 나설 경우 경북(TK)이 고립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 정치무대의 경험이 많지 않아 리더십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정책적 준비가 돼 있는지도 물음표다. 도지사를 내놓고 대선 레이스에 나설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다른 후보들이 마땅찮으면 연말쯤엔 출마 요구가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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