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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불행의 땅에 뿌린 행복의 씨앗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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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호 05면

앞 못 보는 한센인 여인 아순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신부님의 사진을 건네자 보이지도 않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몇 번이고 입맞춤을 한다. 그저 텅 빈 공간인 집 한편에 사진을 놓고 기도를 드린다. 밤에도 신부를 위해 기도하며 울다 잠이 든다. 신부가 떠난 자신들의 삶은 그저 눈물이란다. 종교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24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울지마 톤즈’는 2010년 1월 14일 천국으로 떠난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태워 보여준 사랑의 의미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관객 24만 명 돌파한 종교 다큐영화 ‘울지마 톤즈’

의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사제가 된 이 신부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어 오랜 내전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피폐해진 땅 수단으로 갔다.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보고만 있느냐는 소박한 의문에 그가 얻은 대답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 선문답 같지만 그 말씀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곳 톤즈를 찾아간 신부의 삶은 그 ‘사랑’의 의미를 스스로 구하려 한 삶이었다.

이태석 신부의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에서 시작됐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로서의 삶, 풍금·기타·트럼펫 등 각종 악기를 혼자 익혔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 평범한 이들이라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모든 재능을 그는 가장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병을 보는 의사임을 포기했지만 사람을 보는 의사로서, 의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으로 갔다.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았지만 음악이 가진 위대한 힘을 누구보다 값지게 사용했다.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여준 것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하고, “총칼을 녹여 트럼펫을 만들고 싶다”는 평화에의 소망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는 의미였다. 그가 내려놓은 재능은 모두를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눈물을 수치로 여겨 웬만해선 울지 않는다는 원주민들은 신부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그가 베푼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톤즈에 병원을 지어 하루 300명의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모자라 한센인마을로 이동진료를 다녔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세우셨을까 성당을 먼저 세우셨을까”를 고민하다 성당보다 먼저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자립 능력을 키우고 내적 성장을 이루도록 도왔다. 그들에게 신부의 사랑은 배고픔을 달래주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가 보여준 종교는 오직 사랑이었다. 그가 보여준 선교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끌어안고 그 다름까지도 사랑하며 그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 브라스밴드 아이들이 신부에게 배운 한국가요 ‘사랑해 당신을’을 연주하고 한국어로 노래하며 눈물로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저도 똑같이 해야 합니다”라고 울먹이며 다짐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그가 실천한 사랑이 희망의 싹을 틔웠음을 본다.

연출된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일까. 영화는 신부의 죽음의 과정을 집요하게 쫓지도 않고 그 죽음의 의미를 굳이 해석하려 하지도 않는다. 단지 담담하게 순간순간을 비춰줄 뿐이다. 하지만 그 여백에서 관객은 저절로 그 죽음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젊고 재능 있고, 그 재능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한 그를 왜 먼저 데려갔는지. 칠십이 넘은 나를 데려간다면 기쁘게 갔을 텐데…하나의 신비”라는 동역자 공 야고보 수사의 탄식은 ‘왜 거룩한 종의 죽음을 주가 보고만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회귀한다.

입장 관객이 기록을 세우고 있고, ‘2010 올해의 좋은 영상물’로 선정됐으며, 제1회 KBS감동대상, 제20회 매스컴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는 세상적 수사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사랑의 날개를 달 수 있었던 그의 삶의 기록 앞에 무의미하게 들린다.

다만 전쟁과 폭력, 가난과 기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점점 더 메말라만 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삶의 기록은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아름다운 향기’로 남을 것이며, 그의 죽음은 선교지에서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한 알의 밀알로 뿌려졌음을 믿는다. 이태석 신부의 사랑은 비록 땅에 묻혔지만, 이 기록이 거름이 되어 더 많은 사랑과 나눔의 열매를 터뜨릴 것임을, 그것이 신의 섭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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