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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바란다] 독자위원회 10월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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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보도 내용과 편집 방향을 짚어보는 독자위원회 10월 회의가 26일 오후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토론에는 신구식(申坵植)
위원장(무역협회 차장)
을 비롯한 5명의 독자위원과 본지 문병호(文炳皓)
편집국장대리, 허남진(許南振)
국제담당 부국장,이덕녕(李德寧)
논설위원, 김두우(金斗宇)
정치부 차장, 손병수(孫炳洙)
경제부 차장, 김우석(金佑錫)
사회부 차장, 정명진(鄭命鎭)
문화부 차장이 참석했다. <편집자>

▶이정균(李貞均)
일산성신초등학교 교사=이번의 중앙일보 사태는 국민들이 신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교육사례였다.독자로서 중앙일보의 그간 보도를 사실로 믿고 싶다.정형근 의원의 문건 공개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남의 불행’을 은근히 즐기는 다른 신문들의 보도 태도에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기사로는 최근 네 차례에 걸쳐 게재한 교육현장 고발기획이 눈에 띄었다.의도는 좋았지만 이미 보도된 내용이 많아 차별화에 실패한 것 같다.교육 현장에서는 ‘교실 붕괴’라는 말이 이미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과연 현재의 교육이 21세기에 걸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깊이 검토해야 한다.아울러 중앙일보가 9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NIE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부각돼야 한다. ‘신지식인’ 문제도 정부에서 사람을 지정까지 하더니 요즘엔 뒷전으로 물러앉은 것 같다.

▶정옥선(鄭玉仙)
주부=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사장의 구속으로 정부 관계자들의 도덕성과 언론 환경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도 왜 중앙일보가 지식인들의 동참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대응하는 기사에서 너무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좀더 차분했더라면 신뢰성이 커졌을 것이다.

주부들은 ‘마트 투데이’ 면을 유심히 본다.10월 들어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이 일제히 세일을 벌였는데,좋은 물건은 일찍 동이 나기 때문에 주부들의 마음도 괜히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연말까지 징검다리 세일과 밀레니엄 기획전 등이 있으므로 서둘 필요가 없다”는 안내 기사가 나 큰 도움이 됐다.

청소년을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언어 혼탁이 큰 문제다.기자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쓰는데 노력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기사 중에 외래어나 모호한 말이 여전히 많다.

광고에 관한 문제인데,갈수록 기사와 광고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있다.특히 ‘기획광고’는 식별이 힘들다.얼마전에는 재혼알선업체 기획광고와 재혼 관련 기사가 면을 이어 실린 적도 있다.요즘 문화센터 같은 데서 주부들의 영화감상 클럽이 인기인데,10월7일자 문화면의 ‘영화를 통해 보는 경제학·시학’이란 기사는 주부들이 영화 속의 삶과 현실의 삶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조정하 여성민우회 미디어 사무국장=洪사장 구속과 연관된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는 공정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IPI서한 중 중앙일보에 불리한 부분을 누락한 점,김한길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탈법에 관한 기사,서울시 고위 간부의 재산 문제를 거론한 김상택 만평 등이 그런 사례다.시민단체 성명의 보도에도 아쉬움이 크다.시민단체들은 ‘탈세는 성역 없이 처벌돼야 하고,언론탄압의 진상도 규명돼야 한다’며 이 사건의 두 측면을 모두 짚었는데도 중앙일보가 후자만 강조한 것은 왜곡보도라고 할 수 있다.중앙일보가 공정하고 냉정하게 이번 일에 대응했다면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줬을텐데,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 같다.

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회’와 관련해 사설과 취재일기 등을 통해 패널 구성의 편파성을 집중 부각하면서 정작 토론 내용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었던 점 역시 짚고 싶다.‘도·감청 늘었다’ ‘휴대폰도 감청된다’ 등 도청·감청 문제가 거의 매일 지면에 등장했고,의보통합이나 경제정책 보도에서도 총선과 연관해 비판한 게 태반이었다.기사에서 ‘천박’ 등의 격한 용어들을 사용한 것도 거슬렸다.

▶오양호(吳亮鎬)
변호사=이번 사태는 중앙일보에 커다란 위기라고 생각한다.사주 구속 때문이 아니라,그 이후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 때문이다.언론 자유는 공정한 보도와 국민의 ‘알 권리’ 에 바탕을 두는 것인데 자사의 입장을 너무 장황하게 실은 것은 그 내용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공공의 매체로서 옳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폭로한 문건은 제공자를 익명으로 한 것이므로 ‘신중’이 원칙이다.보도에서 이런 기본 사항을 무시한 게 아닌가.

▶申=동티모르 파병에 대해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과 김상택 만평 등에서 비판했는데 이미 국회 동의가 난 뒤였다.이런 기사가 사전에 나왔다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洪사장 구속과 언론탄압을 연계시키면서 뚜렷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또 상대 입장도 실어줬어야 했다.김한길 수석 문제에선 김수석측이 손해배상 요구 등 법적대응에 나선다는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내부에서 반대했던 오동명 기자 건도 마찬가지다.외부 인사가 쓰는 시론에도 중앙을 지지하는 글만 실었다.객관적 시각을 가진 인사의 글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시티은행 한 지점장의 자살사건은 각 신문이 ‘외국계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 국수주의적 시각을 보여줬다.자칫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10월4일자 ‘데스크의 눈-마법의 열쇠를 찾아서’는 내용이 좋고 완성도도 높았다.사법서사가 등기,근저당 설정등의 업무를 독점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시민단체의 봉사활동까지 언급했다. .

▶김창남(金昌南)
성공회대 교수=9월29일자 ‘불우이웃돕기 성금 오용’에 대한 기사는 의미있는 기획이나 이 사업의 취지와 내용을 정확히 전하지 않아 이웃돕기 성금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성금이 심리치료나 교육훈련에 쓰이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지원된 것을 두고 ’낭비됐다‘고 하는 것은 사회복지에 대한 지극히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생활보호 대상자들의 기초생계비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이를 성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처음 도입된 공동모금 제도가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문제투성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국민들에게 불신을 심어 주고,결국 사회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뿐이다.

사회복지학과 평가기사는 평가에 참여한 학교와 불참한 학교를 정확히 밝혔어야 했다.대학 평가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고 중앙일보의 방식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불참한 대학이 받을 불이익도 염두에 둬야 했다.

▶중앙일보=중앙일보 사태는 언론사와 언론을 탄압하고자 하는 세력간의 ‘전쟁’ 같은 것이다.탈세 등 개인 비리에 대한 중앙일보의 견해는 사고·사설·기사를 통해 몇차례 밝혔다.왜 크게 쓰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기사에서 독자들에게 사태의 본질을 쉽게 이해시키려다 보니 다소 과격한 용어가 걸러지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

공정성 문제와 관련해 축구경기를 예로 든다면,한쪽이 일방적으로 룰을 어기면서 손발을 다 사용하고 반칙까지 하는데 이를 심판이 제지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자세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다섯 차례의 시리즈는 洪사장 구속의 본질이 탈세만이 아니고 그 뒤에 ’언론장악‘이라는 기본 구도가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MBC 토론은 언론에게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이번 사안은 기자 자신들이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리고 한마음으로 움직였다.오동명 기자 사건도 있었지만,토론 결과 의견을 모은다면 기본적으로 조직인은 그것을 따르는 게 옳다고 본다. IPI 서한 중 일부 내용이 빠진 것은 담당 기자의 실수였다.다음날 바로 크게 정정보도를 냈다.

정리=윤창희 기자 <chy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