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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일까요] 선행학습하면 성적 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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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후면 중학생이 되는 김영빈(서울 양천구)군은 이제껏 수학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이번 방학에 혼자 초등학교 때 배운 수학 기본 개념을 복습할 계획이다. 하지만 학원에서 중3 수학 과정까지 배우는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생겼다. 지금은 성적이 상위권이지만 미리 교과 공부를 하고 온 친구들과 경쟁하면 뒤처지지 않을지 염려된다. 방학 동안 선행학습과 복습 중 어디에 중점을 둬야 더 효과적일까.

글=박정현 기자
일러스트= 강일구

‘미리 배워 두면 성적 좋겠지’ 기대감 때문

일러스트= 강일구 ilgoo@joongang.co.kr

방학에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열려라 공부팀이 중앙일보 ‘공부의 신 프로젝트’ 대학생 멘토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92%(244명)가 초·중·고 때 ‘선행학습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중 절반은 고등학교 입학 전에 선행학습을 했고(136명·56%) 방학마다 했다는 학생도 29%(70명)나 됐다. 선행학습 진도는 ‘한 학기’가 가장 많았고(116명·47.5%) ‘한 달(56명·23%)’ ‘한 학년(48명·20%)’이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1년 이상’도 7%나 됐다.

왜 선행학습에 열을 올릴까. 비상공부연구소 이지원 선임연구원은 기대·불안·필요성을 이유로 꼽았다. “미리 배우고 학교에서 반복하면 시험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다른 애들은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시대회나 영재학교, 올림피아드 등을 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필요성도 한몫한다.

‘선행학습=성적 향상’은 착시효과일 뿐

선행학습을 하면 정말 성적이 오를까. ‘반짝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선행학습 효과에 관한 연구(2002년)’에 따르면 선행학습은 성적 향상에 별 효과를 끼치지 못한다. 2000년 12월부터 1년간 서울시내 초등 5·6학년 1520명, 중1~3 1622명, 고1·2 184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초·중까지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의 성적이 상승하는 것 같지만 대학입시가 가까워 올수록 오히려 뒤처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교육조사연구실장은 “고3이 돼 모두 전력투구하는 상황이 되면 선행학습 여부가 별 차이가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정책대안연구소는 초6·중3·고3 1000여 명의 수학 선행학습 진도와 이들의 전국 단위 시험 수학 성적을 분석해 발표했다. 그 결과 선행학습과 성적만 놓고 단순 비교하면 선행학습을 한 학생의 성적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개인·환경적 요소 등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김 실장은 “선행학습을 할 때는 1년 또는 그 이상 동안 배울 엄청난 양을 단시간에 배우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행학습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주관적인 믿음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선행학습하더라도 계속 복습해야

세븐멘토 김은실 소장은 “선행학습이 필요한 학생도 있다”며 “학습감각이나 역량이 있으면 초등 6학년이라도 중1·2 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지만 소수”라고 말했다. 그는 자녀의 성향이나 수준을 고려해 방학에 선행학습을 할 것인지, 후행학습을 할 것인지, 제 학년 다지기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녀가 학교 시험이나 문제집을 풀었을 때, 예를 들어 수학의 분수 계산이나 분수 혼합계산 단원에서 1~2개 정도 틀리는 수준이라면 선행학습을 할 수 있다. 3~4개 이상 틀린다면 제 학년 다지기와 선행학습을 병행한다. 5~6개 이상이면 제 학년 공부와 후행학습을 하는 것이 좋다.

학습 멘토링 소셜벤처 ‘공부의 신’ 강성태 대표는 “공신 멤버들에게 선행학습 조사를 해 보면 특목고에 다니지 않는 일반 학생의 경우 수학 한 학기 정도 선행학습을 한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 실장은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최대 1년을 넘지 않고, 학교 진도를 나갈 때 다시 보고, 수업 후 다시 복습을 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주변 분위기에 못 이겨 자녀를 선행학습 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행학습을 요구하던 입시 분위기가 바뀌면서 서서히 선행학습 바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선행학습보다는 ‘선수학습’으로 기반 다져야

스토디코드는 2000년부터 7년 동안 서울대에 입학한 312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선행학습보다는 심화학습이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입학생들은 방학마다 지난 학기 복습(49%)에 시간을 투자한 반면 일반 학생들은 선행학습과 예습에 더 치중(59%)했다. 조남호 대표는 “서울대 입학 비결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깊이 있는 복습을 통해 생각하는 능력을 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방학 때는 선수학습이 선행학습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내용을 배우기 전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교 방정식 단원을 배우기에 앞서 중학교 방정식 단원의 기본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심화 문제까지 제대로 풀 수 있으면 더 잘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나선형이라 한 바퀴 돌고 한 계단을 올라가는 식”이라며 “전 학년 때 배운 내용이 다음 학년에 이어져 나오기 때문에 방학 때는 철저하게 복습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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