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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로드맵 … 선제적 타이밍을 중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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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현 지식경제부 장관)이 대선 캠프를 구성하라는 지시를 받은 건 2006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불과 8개월 앞둔 시점에 캠프를 꾸릴 생각을 한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007년 1월 3일 박 전 대표는 캠프 개소식을 마쳤다. 그리고 이틀 뒤부터 분야별 정책자문단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7대 대선 D-349일이던 시점이던 이때 박 전 대표는 외교안보 분야 자문단 10여 명을 처음 공개했다.

 4년 뒤인 2010년 12월 27일.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교수)이 출범했다. 18대 대선 D-724일인 시점에서다. 지난번 대선 때보다 1년 이상 앞당겨 대선을 향한 시동을 건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대회에 참석해 김광두 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이 연구원은 15개 분야에 78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안성식 기자]

 4년 전 순차적으로 자문교수단을 공개하면서 다소 급조한 인상을 줬던 2007년의 경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제·외교안보 등 15개 분야에서 연구원 발기인만 78명(본인 포함)이나 되는 매머드급 대선용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앞서 20일엔 ‘사회보장법 전부 개정안 공청회’를 통해 복지 문제에 대한 구상의 윤곽을 제시하는 등 차기 대선 예비주자 중에선 ‘선제적 정책행보’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정책 일정을 대선 일정과 동일시하지 말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의 거침없는 움직임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조차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가 신속하고 전격적이어서 놀랍다”고 말할 정도다.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이미 대선 주자로 나서겠다는 뜻을 드러낸 만큼 이제 정치권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며 “숨기거나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게 오히려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2년이란 시간은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기 위한 시간이 될 것이나 정치적 행보는 지금처럼 차분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의 대선 스케줄이 앞당겨진 이유를 측근들은 2007년 경선의 교훈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4년 전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선을 제압당한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당시 대선 1년6개월 전에 대표직을 물러나야 하는 당헌 탓에 2006년 6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런 다음 그해 겨울까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대표직 사퇴 이후 6개월 정도를 손 놓고 있었던 것이 경선 패배의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박 전 대표가 경선을 불과 8개월 앞두고 캠프를 꾸리고 정책을 내놓다 보니 경선 기간 내내 ‘콘텐트 부족’이란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경제’와 ‘안보’ 분야에선 이 대통령에게 이슈를 선점당하고 말았다. 박 전 대표가 2007년 경선에서 석패하자 친박계 의원들에게선 “준비가 너무 늦었고, 주요 이슈를 빼앗겼기 때문”이란 반성이 이구동성을 나왔다. 이번 연구원 출범과 관련해 박 전 대표가 ‘대선 선제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친박계에서 나오는 건 2007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대세론’으로 굳히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지난 3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고, 현재도 다른 예비주자들보다 지지율에서 20%포인트가량 앞서 있다.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중성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는 만큼 이젠 국가운영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 행보를 통해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의 ‘선택’이 전술적으로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보면 지난번 대선 국면에서 타이밍을 놓쳤던 데 대한 반성이 담겨있는 것 같다”며 “먼저 치고 나가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만큼 그의 행보가 빠르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영남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대선 시동을 조금 빨리 건 감이 있다”며 “앞으로 당 안팎에서 많은 견제구가 날라올 것이므로 그걸 극복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글=강민석·이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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