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머리 중요한 스마트 파워 시대,토끼의 지혜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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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호 20면

미국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지의 로고는 넥타이를 맨 토끼 머리 형상이다. 토끼 머리를 로고로 만든 사람은 아트 폴이라는 플레이보이지 초대 아트디렉터다. 그는 놀기 좋아하고 장난기 있는 토끼의 이미지를 이용해 성적 코드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턱시도까지 입혀 세련미를 더했다. 여기에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토끼의 특징과 성인잡지라는 플레이보이지의 성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이 로고는 크게 성공했다.

토끼는 약한 짐승이다. 그래서 쫓기는 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토끼의 왕성한 번식력은 약자의 생존전략 중 하나다. 일정한 발정기 없이 아무 때나 짝짓기를 해 새끼를 잉태할 수 있는 생물은 인간을 제외하고 오직 토끼뿐이라고 한다. 잡아먹히는 숫자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아야만 종족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토지세(脫兎之勢)는 날쌔게 달아나는 토끼의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행동을 의미한다.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긴 신체적 특성은 도망치기 위한 최적의 구조다. 평지에서 토끼보다 빠른 짐승도 비탈길을 오르면 금세 뒤처지고 만다. 토끼의 생존 전략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토삼굴(敎兎三窟)이란 말이 있다. 토끼가 굴을 팔 때 세 군데를 판다는 뜻으로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놓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시대에는 이러한 토끼의 약한 면을 부각해 한반도의 지형을 토끼모양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긴 최남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 창간호에 한국 지도를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로 바꿔 싣기도 했다.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토끼는 약한 동물이 아니었다. 십이지에서 정동(正東)의 방위신인 토끼(묘·卯)는 열두 마리 짐승 가운데 쥐 다음으로 작지만 그 위치는 호랑이와 용 사이에 있다. 토끼를 가리키는 ‘묘’라는 글자는 생명이 왕성하게 번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힘차게 도약하는 청춘의 상징인 것이다. 오방색 중에는 푸른색이고 사계절로는 봄의 한가운데다. 음양오행에서는 양(陽)이요, 목(木)이다.

한·중·일 삼국에서는 토끼를 신비함과 영원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긴다. 세 나라의 불교와 도교, 신화나 전설 등에서 토끼는 하나의 문화유형으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세 나라 문화 속에서 토끼는 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토끼가 달 속에서 떡방아를, 중국에선 약 방아를 찧는다고 믿는다. 절구질하는 토끼는 인도와 중국의 신앙과 설화가 결합돼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진 것이다. 토끼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사람들은 예부터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나 동양고전에 등장하는 토끼는 작고 약해 보이지만 꾀가 많아 언제나 재치 있게 위기를 극복한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고 동물들 사이 분쟁의 해결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호랑이 같은 맹수에 비하면 토끼가 약한 동물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재치와 꾀로 강한 동물에게 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이용한다. 이로써 약자를 보호하고 이익을 얻는 존재로 등장한다. 내년은 신묘년(辛卯年) 토끼해다. ‘스마트(smart)’가 대세인 시대, 영리한 토끼에게서 삶의 지혜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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