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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틴더박스’와 연평도

미주중앙

입력

‘인어공주’와 ‘벌거벗은 임금님’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와 ‘미운 오리새끼’…. 세계 어린이들에게 마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요한 안데르센의 대표적인 동화들이다. 안데르센은 북유럽에서 구전돼온 이야기에다 자신의 체험과 의식을 불어넣어 창작동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가슴 한 켠에 짠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묘사가 잔인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작품을 일컬어 흔히 ‘몸집이 작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험악함을, 인간의 비애를, 인생의 잔혹함을 미리 학습시켜준다고 할까.

안데르센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틴더박스(Tinderbox)’는 독재 압정에 맞서 민중의 봉기를 부추기는 예화로 가끔 인용되기도 한다. 실린더 모양의 통 속에 낙엽이나 마른 가지 같은 불쏘시개(틴더)와 부싯돌을 넣은 상자가 틴더박스, 곧 ‘부시통’이다. 성냥이 나오기 전까지는 병사들의 필수 휴대품이었다.

동화의 주인공은 미천한 신분의 병사다. 스토리는 병사가 마귀할멈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마녀는 병사에게 금화가 잔뜩 숨겨져 있는 고목나무의 소재를 알려주며 대신 부시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마녀가 답변을 거부하자 병사는 할멈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려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병사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 얼마안가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 때 우연히 타워에 갇힌 공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딸이 평민 출신의 병사와 로맨스를 벌일 것이라는 한 점쟁이의 예언에 화가 치민 왕이 공주를 탑 속에 가둬버린 것이다.

한밤중 램프에 불을 밝히기 위해 부싯돌을 꺼내 불씨를 만드는 순간 병사는 화들짝 놀란다. 갑자기 사나운 개 세마리가 나타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짐한 때문이다. 그제서야 그는 틴더박스가 요술 부시통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병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개는 공주를 데려온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달콤한 사랑에 빠진 두 남녀. 그러나 동화는 비극을 향해 광폭한 질주를 시작한다.

복수에 눈이 먼 왕은 병사를 잡아다가 재판절차 없이 처형대에 올린다. 극적인 반전은 병사가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모금 피우고 싶다며 부시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불씨를 지피는 순간 개가 나타나 왕을 잔인하게 물어뜯어 하늘 높이 내동댕이친다. 절대권력자는 처절한 죽음을 맞게 되고….

안데르센은 이 동화에서 마귀할멈은 정권에 빌붙어 서민들을 수탈하는 무리로, 왕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폭군으로 그렸다. 안데르센 동화의 결말이 이처럼 비극적인 것은 그의 개인사와 무관치 않다. 핍박의 고통 가운데 가난한 삶을 살았던 안데르센은 그 응어리를 ‘틴더박스’로 풀어냈다.
지난 주말 틴더박스가 야후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 검색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클릭을 해보니 안데르센의 동화가 아니라 한반도 사태였다.

평양을 방문 중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한반도의 지금 상황은 불씨와 같다며 사태를 틴더박스에 비유한 탓이다. 남과 북 양측이 자제하지 않으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고 자란 네티즌들이 틴더박스란 단어에 호기심이 당겼던 모양이다.
어쩌면 연평도 사태가 동화에 등장하는 틴더박스가 될지도 모른다. 김씨 일가의 3대세습 폭정이 붕괴돼 북녘땅 주민들에게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 주는 그런 요술 부시통이다.

박용필 [LA지사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