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갑진의 '비천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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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녹슨총〉으로 대뷔, 〈오아시스〉와 〈가재잡던 사람들〉, 〈LOVE〉등의 짧지만 인상깊은 SF작품들을 발표한 작가 심갑진.
특히 〈가재잡던 사람들〉은 한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프레임구도와 SF적 세계와 가재잡는 옛적인 추억이 잘 어울려진 귀결구조를 갖는 작품이었는데, 허무한 마지막 장면에서 오히려 따뜻함을 연상케하면서, 그림체나 콘티를 보는듯한 구도, 작가의 의식등 모든 요소들이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 작품이었다.

〈오아시스〉에서의 자신만의 귀여운 캐릭터들도 멋졌고, 비록 그림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조금 무성의하게 보였지만 작가 스스로가 갑작스럽게 만든 작품이라고 밝힌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한 작품 〈LOVE〉도 광각렌즈를 사용한 영화속 프레임등을 연상케하며 여전히 이 작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럼, 본격 SF미래묵시록이란 모토를 내건 단행본 3권으로 일단 1부가 완결된 비천어를 보도록 하자.
이 작품이 〈가재잡던 사람들〉의 작가인 심갑진의 작품이란 것을 알고 적잖이 기대하며 한장한장 관심깊게 읽어보았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역시 실망도 크다는 말을 떠 올릴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예전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더 섬세해졌고 화려해졌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작품등과 비교해도 그림체에 있어선 뒤쳐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독창성에 있다.

첫장면부터 보자. 비천어가 발견되는 장소에 대한 묘사는 터미네이터2 혹은 총몽의 첫장면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총몽의 팬들은 비천어 단행본 1권의 173페이지를 보고 어떤 장면을 연상하겠는가?

총몽의 커버디자인을 연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외에도 나오의 몸속에 존재하는 비천어의 모습은 총몽의 가리의 눈빛과 많이 닮아있다. 그외에도 총몽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은 많다.
무아박사의 팔이 잘린 후 다시 팔이 생기는 모습은 아키라에서 데츠오가 이미 써먹었던 것이고, 기계와의 합일은 노인Z나 아키라에서 소재가 되었던 것들이다. 잭휴와 폭주족과의 레이싱 장면 역시 아키라에서 본것이다.

카레이서인 주인공 나오의 경쟁자인 잭휴는 또 어떠한가? 카와지리 감독의 달리는 사나이의 주인공인 카레이서의 이름이 잭휴가 아니었던가? 카레이서 장면에서 사용된 경주용 차들의 디자인 자체가 비숫하기까지 하다. 기계화된 인어들의 모습이나 비천어들의 공격모습은 영화 에어리언을 연상케하고 (단행본 2권에서 변신한 로저박사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장면은 에어리언2에서 우리는 이미 보았었다) 그렇지 않다면 몇몇 장면에선 스피시즈를 닮기도 한다. 비늘덮힌 비천어의 모습에선 영화 프레데터를 볼수도 있다.

무아박사의 한팔이 총으로 변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론 부제를 銃男이라고 붙여도 손색이 없을 츠카모토 신야감독의 철남2에서의 그것과 너무나도 똑같지 않은가? 또한 〈비천어〉의 기본적인 줄거리 자체가 차라리 이와아키의 기생수와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이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처럼, 작품 비천어의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더욱 자세히 보게끔 만들었는데... 〈가재잡던 사람들〉에서 보았던 그 독창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SF만화를 보는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상상력일 터인데, 그런 의미에서 〈비천어〉는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난 작가 심갑진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비천어 이전의 작품들이 나에게 준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독창성과 〈비천어〉에서 보여준 그림체가 합쳐진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SF만화작가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을 관심있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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