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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빅(Mr.Big)

중앙일보

입력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폴 길버트 (Paul Gilbert)가 빠지고 새로운 기타리스트 리치 코젠 (Richie Kotzen. 前 포이즌)이 참여한 미스터 빅의 새로운 음반 〈Get Over It〉 (1999)를 듣고 난 느낌은 마치 김 빠진 맥주를 마신 기분이었다.

지난 앨범 〈Hey Man〉(1996)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실패했지만 그나마 미스터 빅이란 이름을 지켜준 건 폴의 기타 연주였음을 여실히 보여준 음반이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록 음악계의 스타급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소위 'Big-4'라고 불리우던 배드 랜즈 (Badlands), 블루 머더 (Blue Murder), 배드 잉글리쉬 (Bad English)가 모두 2장의 음반만을 발표한채 사라졌지만 (배드랜즈의 경우 미발표곡 모음집 〈Dusk〉가 최근 공개되었다.) 미스터 빅 만큼은 지금까지 굳건히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 결성된 당시만 하더라도 레이서-X (Racer-X)에서의 활동을 통해 전광석화같은 핑거링을 자랑하던 테크니션 폴과 탈라스 (Talas), 데이빗 리 로스 (David Lee Roth. 前 밴 헤일런의 보컬리스트) 밴드에서 기타를 압도하는 베이스 연주를 들려주던 빌리 시언 (Billy Sheehan), 그리고 잉위 맘스틴의 뒤를 잇는 속주 기타리스트 크리스 임펠리테리 (Chris Impeliteri)의 명작 〈Stand In Line〉 (1988년.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리메이크 수록)에서 드럼을 연주하던 팻 토피 (Pat Torpey)의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테크닉을 앞세운 록 밴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물론 평범한 록 음악을 하던 소울풀한 목소리의 소유자 에릭 마틴 (Eric Martin)이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것에 대해선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1989년 공개된 데뷰작 〈Mr.Big〉은 일부 매니아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준 문제작이다. 당시 많은 스쿨 밴드들이 앞다퉈 카피하며 연습했던, 기타와 베이스의 유니즌 플레이가 압도하는 첫곡 'Addicted To That Rush'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곡에서 자신이 가진 테크닉을 절제하면서 밴드 지향의 록 음악을 들려 주었다. 웬만한 자제력(?)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다. 그다지 상업적으론 크게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록계의 '거인'으로 향하는 첫 걸음으론 무난한 출발이었다.

벽을 뚫고 탈선한 기차의 모습이 인상적이던 커버를 담고 있던 2집 〈Lean Into It〉 (1991년)은 미스터 빅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성공작이다. 폴과 빌리의 드릴을 이용한 기타 연주로 많은 화제를 뿌린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 (당시 에디 밴 헤일런이 연주했던 'Poundcake'와 함께 누가 처음 드릴 연주를 시도했느냐 하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팝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Green-Tinted Sixties Mind'가 연속적으로 싱글로 발표됬지만 당시엔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방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집중적으로 틀어주던 어쿠스틱 발라드 'To Be With You'가 전국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캣 스티븐즈 (Cat Stevens)의 명곡 'Wild World'를 리메이크 히트시킨 〈Bump Ahead〉가 공개된 것이 1993년. 'Ain't Seen Love Like That' , 'Promise Her The Moon', 'Nothing But Love'등 전작에 비해 늘어난 발라드 곡의 숫자 만큼이나 팬들로선 우려 또한 클 수 밖에 없는 음반이었다. 밴드의 이름을 따오기도 한 프리 (Free)의 원곡 'Mr.Big' 이나 'Colorado Bulldog' 정도만이 초기 미스터 빅을 좋아하던 팬들을 만족시킬 정도였다.

1996년, 결과적으론 폴 길버트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Hey Man〉이 발표되었지만 'Take Cover'를 제외하곤 맥빠진 곡들의 집합체라는 생각만 들뿐, 더이상 미스터 빅 특유의 음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국내 팬들의 환호 속에 성공적으로 끝마친 내한 공연의 기쁨도 잠시, 각자 솔로 활동에만 열중하면서 밴드의 해산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폴 길버트는 팀을 떠났고 그 뒷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한대로이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팀의 색깔과 부조화를 이룬다면 참여하지 않는 것만 못한 일이다. 폴의 선이 굵은 연주에 비해 리치의 연주는 나무 젓가락 부러지는 듯한 가벼움만이 느껴질 뿐이다.

초창기 보여준 미스터 빅의 재능이 지금에 와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본인만의 견해는 아닐 것이다. 처음 팝이란 줄기에서 출발해서 록과 소울이라는 음악적 뿌리로 접근해온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 에릭이나 여타 멤버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부진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의 침체기가 미스터 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과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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