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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메마른 사상 지평 넓힌 ‘전환시대의 지식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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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리영희(81). 5일 타계한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이름 석자로 통하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기자·교수·사회운동가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지식인’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1970∼80년대는 그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속도를 내던 시절, 대한민국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민주화운동 진영에 리영희가 있었다. 기자 출신의 대학 교수였고, 가진 것은 펜밖에 없었지만, ‘약한 펜’으로 군사독재의 ‘강한 벽’을 허무는 데 앞장섰다. 네 번의 해직, 세 번의 투옥을 겪었다. 고통이었지만 영광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우리 현대사에 그가 기록해 놓은 공적으로 평가된다.

 ◆한국 현대사의 명암=고인의 한 평생은 우리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성찰해보게 한다. 대표작은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 『우상과 이성』(1977)이다. 70∼80년대 대학생 필독서였다. 그는 대학강단과 제도권 언론이 전하지 않는 ‘또 다른 사실’을 전하려고 했다.

 고인이 유명해진 것은 운동권 학생들의 법정진술을 통해서였다. 대학생들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의 저서를 지목했다. 그의 책은 금서로 묶였지만 볼 사람은 다 봤다는 얘기다. 당시 그는 젊은이에게 ‘사상의 은사’였지만 정보기관 입장에선 ‘의식화의 원흉’이었다.

 그는 ‘우상 파괴자’를 자임했다. 특히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에 대한 이성적 해체를 시도했다. 저서와 칼럼을 통해 국제 정세의 변화를 알렸다. 중국·베트남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적극적 평가는 기존 제도권 교육의 틀을 흔들었다. 마르크스라는 말을 입밖에 내기 조차 꺼려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말년에 뇌출혈로 고생했지만,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민주화에 기여했던 그가 이념적 곤욕을 치러야 했다. 냉전 시대 대결의 한 쪽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아이러니다. 대한민국 60년의 성공이 빛을 내기 시작한 반면, 동유럽 사회주의는 붕괴되고, 북한의 비참한 실상이 속속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 대한 ‘이념적 역공세’도 전개됐다. 군사독재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시장경제의 가치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었고, 또 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을 키워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에 반대하면서 사회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에 대해선 관대했다는 것이다. 그가 대한민국을 부정했다고 보는 이들은 그를 사회주의 옹호자로 몰아세운 반면 그를 변호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든 계몽주의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주의권 붕괴로 진보 진영이 대혼란을 겪던 91년 1월 그의 행적은 기억해 둘만하다. 진보 진영의 한 학술대회에서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란 글을 발표했다. 보수 진영에선 운동권 대부의 ‘전향’으로, 진보 진영에선 ‘변절’로 몰아갔다. 양측 모두 자신의 정파적 이념 투쟁에 그를 활용할 뿐, 그가 보여준 지식인의 ‘지적 성실성’에 대해선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다.

 고인은 2000년 뇌출혈 진단을 받고, 2006년엔 집필 생활 마감을 선언했다. 그리고 5일 지병 간경화로 눈을 감았다. 그가 끝내 못다한 말을 채워가는 것은 이제 후학의 몫이 됐다.

 ◆파란만장한 일생=고인은 1929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났다. 47년 경성공립공업고(현 서울공고)를 거쳐 50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졸업했다. 안동공업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통역장교로 입대, 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 생활 시작, 64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검토 중’이라는 기사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심에서 선고유예를 받는 등 수 차례 고초를 겪었다. 68년 베트남 전쟁 반대, 71년엔 위수령에 항의하는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72년 한양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에도 두 차례 해직을 당했다. 언론자유상· 한국기자협회 제1회 ‘기자의 혼’상· 후광김대중문화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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