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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상가 곳곳 휴업 … “섬이 텅 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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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백령도의 한 주민이 골조만 올라간 채 중단된 민박집 공사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백령도에는 연평도 피격 후 인부들이 서둘러 섬을 떠나면서 짓다 만 민박집이나 전원주택, 비닐하우스 등이 곳곳에 방치돼 있다. 휴업 팻말을 내건 가게들도 속출하는 등 섬의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다. [백령도=장정훈 기자]


3일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에는 바닷바람이 거셌다. 섬 북쪽 고봉포구 민박집 공사 현장에서 혼자 찬바람을 맞으며 벽돌과 기와 등을 천막으로 둘러 싸매고 있는 최지훈(48)씨를 만났다. 최씨는 “인천에서 들어왔던 인부 6명이 연평도 포격 후 모두 나가버렸다”며 “골조만 올라가다 만 공사를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섬에서 3개월간 먹고 자던 인부들은 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가족들한테 전화가 계속 오자 ‘미안하다’며 모두 떠났다”고 덧붙였다.

 백령도에는 이날 며칠째 짙게 깔렸던 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니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 철새가 날아드는 영락없는 평화로운 농촌마을이었다. 하지만 섬 곳곳에 인부들이 떠나는 바람에 짓다 만 민박집이나 전원주택, 식당, 비닐하우스 등이 방치돼 있었다. 또 상가가 밀집한 진촌리에는 ‘휴업’이란 팻말을 내건 식당과 양품점, 여행사, 낚시가게 등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진촌리에서 식당을 하는 최인자(56)씨는 “연평도 포격 후 섬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며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속으론 섬 기능이 정지됐다”고 말했다.

 백령도에는 주민과 해병대가 각각 5000여 명씩 1만여 명이 거주한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 후 해병대는 외출·외박이 전면 중단돼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또 주민 530여 명이 섬을 빠져나갔다. 남아 있는 주민 상당수도 인천으로 나갈 계획을 짜고 있다. 주민 함성관(58)씨는 “난 그동안 나가고 싶어도 추곡수매 때문에 못 갔다”며 “추곡수매가 어제 끝났고 이제 김장만 하면 인천으로 뜨겠다”고 말했다. 이명숙(57) 진촌리 새마을부녀회장은 “백령도 주민들은 천안함 피격이나 대청해전 등 산전수전 다 겪었다”며 “하지만 북한의 이번 민간인 포격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령도의 경우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연평도 주민들처럼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대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섬이 연평도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탈출 과정에서 피격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개인택시 기사 손동일(70)씨는 “백령도를 끝까지 지키겠단 사람들은 ‘북한이 설마 백령도를 어쩌겠느냐’고 자위하곤 한다”며 “하지만 속내는 육지로 가고 싶어도 생계 때문에 갈 수 없어 속만 끓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일 백령도 주민들은 대피소로 들어가 가슴을 졸이며 하룻밤을 보냈다. 백령도 주민들은 이후 집집마다 면에서 지급한 방독면을 꺼내 놓고 컵라면이나 부탄가스 등을 쌓아 놓고 있다. 노명성 백령면장은 “주민들이 연평도 포격 후 동요했지만 지금은 안정을 찾고 있다”며 “섬을 비운 주민들도 예년보다 아주 많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섬이지만 농업 종사자가 70%에 달해 예년에도 농한기인 겨울엔 인천 등으로 나가 음력 설까지 쇠고 오는 주민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령도가 정상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초등학교 두 곳도 육지로 나간 학생들의 복귀가 늦어져 중간고사 일정을 못 잡고 있다. 백령초등학교와 북포초등학교는 연평도 포격 다음 날부터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이날부터 수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두 학교 학생 257명 중 44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의명 백령도 주민대책위원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연평도 포격까지 터져 주민들의 속은 새까맣게 탔다”며 “언제쯤 섬이 제 모습을 찾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백령도=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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