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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신파?, 세상은 정말 변해가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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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라이브 플래쉬〉속에 나오는 일탈된 욕망의 군상은 우리처럼 뒤틀린 정치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공감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는데, 버스안에서 태어난 자신처럼 성급히 세상밖으로 나오려는 아이를 향해 "거리도 북적이고 예전과 달라졌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난 1971년 프랑코 독재시절과 1997년 현재의 변화를 얘기한 것이다. 사람들의 운명은 쳇바퀴처럼 돌고 돌아가는 것이지만 어쨌든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모도바르는 얘기하려는 것일 것이다.

시사회가 끝난 후 일반관객들 틈속에 끼어 극장 계단을 내려오는데, 20대인 듯한 여성 두명의 대화가 들렸다. "신파야, 신파. 완전 386 아니니?". 그렇다면 386=신파? 이제껏 한번도 스스로를 원로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들의 얘기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신파라…. 이른바 80년대도 이제는 시대적 유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얼마 전 강철 김영환의 간첩단 해프닝과 그의 막가파적 변신을 보면서 80년대는 이제, 어떠한 의미로든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386세대를 신파라고 규정짓는 신세대들을 보면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요즘의 영화계 내분에까지 흘러갔다. 영화계는 현재 구파와 신파, 원로그룹과 소장파의 대립이 극에 달해 있다. 문성근, 정지영씨로 대표되는 이른바 영화계 소장파들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했으며 영화계 개혁의 산실로 주목을 받아 온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계 구파와 이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맥들에 의해 "접수됐다".

1789년부터 1864년까지 근 백년간 지난하게 이어진 프랑스 혁명을 생각하면(프랑스 혁명까지!) 영화계로서는 지금이 분명 보수반동의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왕정복고의 시대인 것이다. 물론 사회발전은 진보와 보수의 끊임없는 자리바꿈과 엎치락 뒷치락하는 세력다툼속에 한발짝씩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다.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 역시 양측의 갈등과 융합의 과정속에서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386조차 쉰세대로 판단하는 젊은이들이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생각때문에 답답증과 조급증이 인다. 이들 20대들에게는 하물며 문성근씨조차 원로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진짜 영화계 구세대들에 대해서는 아예 할말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우스개 소리로 국내 NGO 운동의 대부격으로 활동하는 성공회대학 조희연교수의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일명 "광주사태"를 일제시대때 광주 기차안에서 벌어진 조선학생과 일본학생간의 패싸움쯤으로 인식하고 있을 정도임을 감안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다.

때문에 양측 모두 마음을 다소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 아닌 가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장유유서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이른바 "어른들"이 먼저 너그러움과 아량을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구세대 영화인들의 좌장 역을 맡고 있는 김지미씨는 최근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영화인협회 명의로 성명을 하나 냈는데, 지금까지 내놓은 발표문중에서 가장 논리적이라는 측면에서, 또 구세대 영화인들의 신세대영화인들에 대한 판단의 잣대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구세대에 따르면 신세대 영화인들은 요 몇년 사이 대기업들의 돈을 마구 가져와 영화를 만들어 그 중 몇편을 성공시키면서 "지금 막 뜬"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미성숙한 젊은이들일 뿐이다. 그러던 중, 모두가 다 알다시피 지난 해 IMF의 여파로 대기업들이 영화사업에서 모두 자진 퇴출된 이후, "청년" 영화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새로운 돈을 찾게 됐고 결국 이들의 눈에 띈 돈은 정부가 지원한다는 5백억원의 영화산업기금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5백억원을 차지하기 위해 이 돈의 배분 권한을 갖는 영화진흥위원회의 "헤드"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돈을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선배들이 간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지금 영화진흥위원회를 구세대가 "통제"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김지미씨 등은 젊은 영화인들을 돈만 아는 파렴치한 인물들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중요한 허점이 있다. 문제는 이 돈을 누가 관리하느냐에 앞서 과연 이 기금이 영화 제작자금으로 올바르게 활용될 것인 가, 다시 말하면 "현재"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 가에 있다. 김지미씨 등의 얘기대로라면 지난 수십년간 영화 한편 만들지 않아 온 자타칭 감독, 제작자라는 사람들도 영화기금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가는 자칫 이 엄청난 돈이 단지 몇편의 영화를 만드는데만 쓰일 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관리인가? 젊은 영화인들이 돈을 독식한다치더라도 그들이 바로 지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돈에 대한 욕심으로 비쳐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어른들"을 무시하고 살아 온 세상이 아닌 바에야, 선배 영화인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후배영화인들도 좀더 노력했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액 3개월동안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지낸 문성근씨 잘못도 적지 않다. 그는 부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투자조합 결성이니, 서울종합촬영소 개혁방안이니 하는 정책입안에 몰두하기 보다는(산하에 정책연구원같은 기구가 있으니까) 원로 영화인들과의 대화를 앞장서서 풀어나가는 '정치'를 했어야 했다. 그는 그런 점을 소홀히 했고 그래서 결국 프랑스 혁명의 "당통"처럼 되고 말았다. 부위원장이 되기 직전까지 전문투자회사 유니코리아를 운영하면서 영화인 모임인 "충무로 포럼"과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이끄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이제 정말 "연기할 일"밖에 남지 않았다. 연기자로서 중견을 넘겼으니 그 역시 원로급이 돼가고 있다.

영상세대라고 부르는 젊은 영화팬들에게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대는 영화인들 모두가 시대적 "유물" 취급을 받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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