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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더 나은 삶 이끄는 길라잡이, 향그러운 축제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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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일보가 주최·주관하는 3대 문학상 시상식이 2일 서울 서소문 오펠리스 홀에서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 이시은(소설)·손경민(평론)·박현웅(시),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이승우, 미당문학상 수상자 장석남 시인,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 고은규·오수완씨. 뒷줄은 왼쪽부터 허남진 본사 논설주간,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홍기삼 미당기념사업회 이사장(전 동국대 총장), 황동규 시인, 이수미 웅진씽크빅 단행본 부문 본부장.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만 신춘문예를 거부하고 8월에 신인을 뽑기에 그래서 어쩔 테냐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와 보니 대단히 치밀한 계산을 해서 10년 만에 이 전부를 한꺼번에 모아 다른 신문에선 볼 수 없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미당(未堂)문학상·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을 대표한 축사에서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3대 문학상을 통합한 시상식에서다. 제10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제11회 중앙신인문학상, 그리고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시상식이 2일 오후 6시 서울 서소문 오펠리스 홀에서 열렸다.

지난해까지는 미당·황순원문학상과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이 함께 열렸으나 올해부터는 1억원 고료의 중앙장편문학상 시상식도 통합됐다. 수상자만 7명에 달하는 이 축제에 문인과 수상자 가족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한국 문단의 중견·신예가 한자리에 모여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문학의 소임을 다진 큰잔치였다.

 ◆재기와 유머 넘치는 축사=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축사였다.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장석남 시인에 대한 축사는 소설가 김도연씨가 맡았다. 김씨는 “장석남 시인이 미당문학상을 탄 것은 제 덕이 크다”며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 겨울 백담사 만해마을 창작실에 함께 있을 때 눈이 많이 온 날 차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운전을 잘 해서 착지를 잘 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삐끗했더라도 장석남 시인은 이 상을 타지 못함은 물론이요 상금 3000만원도 받지 못했을 겁니다.”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이승우씨의 축사는 곽효환 시인이 맡았다.

 “이승우는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요란을 떠는 법 없이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 나가면 금메달을 따는 핸드볼이나 하키 같은 국제용 운동종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단편과 장편에 두루 능한 국내와 국제무대에 모두 통하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작가라고 믿습니다. 실업률이 날로 치솟는 요즘 저는 더 유명해지기 전에 그의 매니저가 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앙신인문학상 심사위원을 대표해 축사를 맡은 이문재 시인은 자신이 새내기 시인이던 시절의 경험을 꺼냈다.

 “신인 시절 노시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시는 발표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곤 하룻밤에 시 10편을 쓰던 나는 속으로 코웃음 쳤습니다. 청탁이 안 와서 못 쓰지 생각하며 그 충고를 금방 잊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두 번째 시집을 낼 무렵 알게 됐습니다. 그 충고는 아직 실천 못하고 있습니다. 이 한가지 태도가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문학을 하는 작가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 드린 당부의 말씀이 앞으로 여러 분이 문학을 하시는 동안 영원히 생각나지 않길 바랍니다.”

  모든 수상자들에게 던진 김윤식 교수의 축사에도 유머가 담겼다. “석가세존이나 예수나 성인의 머리엔 광배가 있습니다. 오늘 수상한 사람들은 그런 정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가까이에서 그 정기를 쐬어 우리도 고상해지는 것이 오늘 시상식의 의미 아닌가 싶습니다.”

 ◆각계 축하객=시상식은 한국문단의 대축제였다. 참가자들은 참가자들을 축하하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문학, 영상시대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문학 등을 얘기했다. 특히 한국문단의 중견·신예가 한데 모여 흥겨움이 더했다.

 주요 참가자는 시인 황동규·신현림·천양희·김기택·박상순·이승철·나희덕·정끝별·강정씨, 소설가 윤후명·최윤·이혜경·구효서·김형경·김인숙·서화진·임영태·김도연·김연수·정길연·김도언·박성원·손홍규·구경미·해이수·박주현씨, 문학평론가 김윤식·황현산·권오룡·이경철·이숭원·이기인·우찬제·정홍수·윤재웅·이광호·황종연·김미현·김수이·복도훈·백지연·조강석·이수형·조연정·허윤진씨 등이다. 출판계에선 장은수 민음사 대표, 강병철 자음과모음 대표,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등이 참석했다. 미당기념사업회 홍기삼 이사장, 허남진 중앙일보 논설주간, 웅진씽크빅 단행본부문 이수미 본부장도 자리를 빛냈다.

글=신준봉·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수상자 말말말

◆미당문학상 - 장석남 ‘가을 저녁의 말’

 “어쩌면 시는 세상 밖의 신선한 향기를 짐작하고 가늠해 가면서 그 향기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길인지 모릅니다. 그 길의 대 선배인 미당 선생께서 세워주신 이 자리는 제 일생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일 겁입니다. 그 파동이 즐겁고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얼굴이 뜨겁기도 합니다. 미당 선생의 시는 제 시의 호적부입니다. ”

◆황순원문학상 - 이승우 ‘칼’

 “ 문학이라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거대한 바다를 채우기 위해 바다를 향해 길을 낸 수많은 크고 작은 강들 가운데 아주 보잘것없는 하나의 물줄기로,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또 한 30년 흐를 생각입니다.”

◆중앙신인문학상 시 - 박현웅 ‘사막’

 “시에 가장 뜨거운 심장을 내주었을 때 내 몸에는 바람이 일었고 난 그 바람의 틈에서 살고 있습니다. 춥고 황량했던 겨울을 지나 바람의 주법을 타며 솜털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생각합니다. 날개가 접혔다 펴지는 사이에 존재하는 추락, 나는 그 추락을 용서하는 날갯짓에 충실할 것입니다. 내가 바람이 될 때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 이시은 ‘손’

 “저는 교도관입니다. 언어가 과격해도 이해해주세요. 교도관은 많은 놈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살인한 놈, 사기 친 놈, 도둑질 한 놈. 온갖 놈들이 우글거립니다. 제 마음속에도 이런 놈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맘속에 살고 있는 놈들을 하나씩 꺼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죽는 날까지 꺼내는 일에 열정을 쏟겠습니다.”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 손경민 ‘심연의 도도한 울림 - 김애란의 생성의 존재론’

 “아직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은 과거와 현재의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이미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빛을 찾아내고 새로운 시선으로 재조명하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평론가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중앙장편문학상 - 고은규 『트렁커』

 “경쾌하고 착하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저의 가면 속에 위악적이고 나쁘고 불쾌한, 공포에 질린 제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했던 일이 제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거였는데, 수상으로 인해 그 고통과 정면 승부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 정면승부를 잘 해낼 때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중앙장편문학상 - 오수완 『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습작을 오래 하다 보니 제가 소설을 적는 시간이 그냥 흘려 보낸 시간 같아 제 인생에 미안했는데, 당선되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고은규씨의 훌륭한 작품과 함께 제 부족한 소설이 당선이 되어 미안하고 영광입니다. 앞으로 더 훌륭한 소설로써 보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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