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장애인 체전] 청주 대회 이틀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장애인 육상선수 정운노(서울.(左))씨가 12일 오후 청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800m 트랙 경기에서 도우미인 양성욱씨와 달리고 있다. 장애 정도가 다를 수 있어 모든 선수가 안대를 쓰는 게 규칙이다. 정씨는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청주=김정수 기자

12일 오후 청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25회 전국장애인체전 800m 트랙 결승전.

선두로 질주하는 서울대표 정운노(34.시각장애 1급) 선수의 왼손엔 50cm의 끈이 꼭 쥐어져 있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의 눈이 돼 함께 달리는 비장애인 도우미 양성욱(31.회사원)씨와 연결한 끈이었다.

정 선수의 발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금메달이다"라는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씨 쪽을 향했다. 양씨가 말없이 정 선수의 손을 꼭 쥐었다.

"앞이 전혀 안 보이기 때문에 도우미에 대한 100% 신뢰 없이는 뛸 수가 없죠."(정운노)

"정 선수의 기록이 쑥쑥 향상되는 걸 보면 저도 신이 나요."(양성욱)

어렸을 적 백내장 수술 실패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정 선수가 양씨와 인연을 맺은 건 3년 전. 운동을 좋아했던 정씨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서 유도 종목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유도를 그만두면서 선수 시절 55㎏이던 정 선수의 몸무게는 70㎏에 육박할 정도로 금세 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마라톤이었다.

하지만 유도와 달리 마라톤은 함께 뛸 도우미가 꼭 필요했다. 그때 동료선수로부터 양씨를 소개받았다. 양씨는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을 통해 이미 도우미 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제 어머니도 지체장애인이기 때문에 저도 뭔가 돕고 싶었어요."

직장(한화증권) 마라톤 동호회원이기도 한 양씨의 도움으로 정 선수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안마시술을 하는 정 선수는 집에서 틈틈이 러닝머신으로 연습하고 매주 한 번 양씨와 만나 1시간씩 남산 순환도로를 뛰었다. 양씨의 직장 상사들도 두 사람이 어둡기 전인 오후 4~6시에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 결과 지난해 처음 같이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전에서 800m트랙 동메달을 딴 데 이어, 올해는 800m트랙 금메달 외에 1500m트랙 은메달과 400m트랙 동메달까지 거머줬다. 지난해엔 마라톤 풀코스 도전까지 성공했다.

정 선수는 시각장애인들도 달리기를 즐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양씨 같은 도우미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도 "달리기를 좋아하고 남을 배려할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도우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13일 체전 마지막 경기인 10㎞단축마라톤에도 출전, 다시 한번 '믿음의 끈'을 잡고 청주 시내를 달릴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