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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자금 소명 미흡 땐 MOU 해지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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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싸고 파는 쪽과 사려는 쪽이 뒤엉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각 주관 은행인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에 자금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 대해 예금인출 등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외환은행은 1일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대그룹에 자금 출처를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소명이 부족할 경우 양해각서(MOU)를 해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은 “현대그룹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과의 대출계약서를 7일까지 내라고 공문을 보냈다”며 “자료를 내지 않으면 5영업일의 시한을 다시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이 요청한 자료는 대출금 1조2000억원에 대한 대출계약서와 담보제공·보증 계약서, 신고서 등이다.

 현대그룹이 자료를 제출하면 채권단은 위법성과 허위사실이 있는지를 보고, 주주협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김 본부장은 “현대그룹의 소명이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주주협의회는 MOU 해지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정책금융공사·우리은행 등 총 9개 금융회사로 구성된 주주협의회에서 80% 이상이 동의하면 MOU는 해지된다.

 이 경우 현대건설 매각 협상권은 예비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간다. 김 본부장은 “주주협의회가 (현대그룹 자료에 대해) 미흡하다는 판단을 하면 예비우선협상자가 협상권을 가져갈 수 있다”며 “그게 바로 예비우선협상자를 선정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앞서 외환은행은 지난달 29일 다른 채권단과 최종 의견조율 없이 현대그룹과 MOU를 체결해,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MOU 체결 의무는 주관은행에 위임돼 있다”며 “MOU 체결로 현대그룹의 인수자금에 대한 소명을 더 확실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정책금융공사와 우리은행의 의견을 MOU 체결에서 100% 반영 못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이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 “법률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제출시한으로 정해진 7일 이전까지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법원에 현대차의 이의 제기 금지 신청”

이와 별도로 현대자동차는 이날 양재동 본사 사옥에 있는 외환은행 양재동지점에서 거액의 예금을 빼갔다. 인출 규모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은 “예금 인출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거래 중단이나 지점 철수 요구는 없었다”며 “은행의 유동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범현대가의 주채권은행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외환은행이 아닌 법무법인 변호사가 현대건설 매각 MOU에 서명한 것을 두고 ‘위법행위’라며 MOU의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의 공세에 현대그룹도 발끈하고 나섰다. 현대그룹은 이날 자료를 내고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끊임없는 이의제기를 하는 현대차그룹에 대해 채권단이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편 정책금융공사는 이날 현대그룹 컨소시엄의 자금 출처에 대해 또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7000억원을 투자한 동양증권의 투자조건이 명확하지 않다며 금융당국에 사실확인을 요청키로 한 것이다. “동양종금이 주식을 약정된 시점에 약정한 가격으로 현대그룹에 되팔 수 있는 ‘풋백옵션’을 갖고 있다면 이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주식을 담보로 대출 받은 것과 같다”는 게 정책금융공사의 지적이다.

 이는 “동양종금의 7000억원은 우선협상자 선정할 때부터 이미 타인자본으로 평가돼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외환은행의 주장과 배치된다.

 현대그룹 역시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에게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동양종금 자금은 유 사장도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밝힌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편 외환은행이 MOU 해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날 증시에서는 현대그룹 관련주가 급등했다. 현대상선 주가가 2.67%, 현대엘리베이터가 6.28% 올랐고, 현대건설(1.74%)도 동반 강세를 보였다.

한애란·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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