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의 서울 트위터] ‘전쟁 같다’는 표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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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습니다. 한데 이 슬픔을 짓누르며 ‘기적’이라는 말도 해야겠습니다. 섬마을의 모습은 처참하다는 말이 모자랐지요. 더 많은 사망자가 없었던 게 ‘기적’이라고 위안해 봅니다. 머나먼 서해 고도 연평도 얘깁니다.

 그날 밤. “집이라도 무사한 게 너무 감사하니 쉬다 가라”며 어느 민박집 사장님이 내어준 방에 몸을 뉘었습니다. 참아둔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흘렀습니다. 새벽 5시쯤 됐을까요. 주인 잃은 개들이 짖었습니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밤새 까맣게 타버린 집들이 떠올라 잠을 설친 탓이죠. 옆을 돌아보니 일본에서 온 여기자가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네, 저는 무서웠던 겁니다. 슬플 정도로 적막해진 섬이, 까맣고 추운 그 섬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기자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해도 무서운 건 무섭더군요.

 다음 날. 마을에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만약에 일이 나면, 초등학교 옆 방공호로 가자.” 기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요, 입시와 취업만 전쟁인 줄 알았습니다. 기자가 된 후에는 ‘하루 하루가 전쟁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시간이 흐르면 육아 전쟁이 되겠거니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그 섬에서 알았습니다. ‘전쟁 같다’는 표현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죄 없는 민간인의 죽음, 참혹하게 타버린 집,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린 차, 울며불며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그것에 비견할 만한 ‘전쟁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며칠 후 피란민을 만나러 인천 인스파월드(찜질방)를 찾았습니다. 어느새 정이 든 할머니가 목소리를 낮추시더군요.

 “나중에 연평도 오면 밥해줄게.”

 목숨이 두 개라도 그 섬에 다시는 못 들어가겠다고 하셨지만, 가슴 한편에 꾹꾹 눌러둔 그리움은 감추지 못하셨던 겁니다.

 문득, 그 섬에서 본 들꽃이 떠올랐습니다. 대피소 앞에 쌓아둔 폐타이어 틈을 비집고 피어 있던 들꽃.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섬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치름히 고개를 들고 있었지요. 그 무심함이 차라리 부러웠습니다. 할머니의 마음도 저와 꼭 같겠지요. 화려하지는 않아도 평화로웠던 삶, 그 자신이 들꽃 같은 삶이셨을 테니.  

연평도=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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