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제망신 자초한 한전의 잘못

중앙일보

입력

한국전력은 이번 월성 원전 방사능사고로 국민 앞에 두 가지 '죄' 를 지었다.
방사능 누출 사고를 일으킨 것이 첫째 잘못이요, 둘째는 나라를 망신시킨 일이다.
병사가 싸움터에 나가 패할 수도 있듯 원전과 같이 복잡한 기계덩어리를 운전하다 보면 정지나 불시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국가의 신뢰에 먹칠했다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기 어렵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인정하듯 이번 방사능 누출 사건은 경미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5시간의 보수작업이 있었고, 이 때 피폭이 일어났지만 그 정도가 엑스레이 서너번 촬영 혹은 보통 사람들이 자연에서 받는 연간 피폭량의 2배 가량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한전과 감독기관인 과기부는 이런 사실을 '제때' '정확히' 알리지 못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부터 불신을 자초했다.

사고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5일 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는 '한국에서 20명 방사능 피폭' 이라는 긴급뉴스를 내보냈다.

뉴스와 함께 오스트리아에 있는 IAEA본부와 한국대사관에는 세계 각국의 문의가 빗발쳤다.
22명이 피폭되는 비상사태라면 자국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폭 정도가 경미했음에도 이처럼 세계적인 뉴스로 확대생산된 데는 타이밍이 큰 역할을 했다.
사고가 일어난지 만 하루가 다 돼가는 5일 오후 7시쯤 나온 보도자료는 중수누출과 피폭사실만을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다.

신문.방송.통신이 마감에 쫓기는 시간에 그것도 일본 핵사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점에 나온 뉴스는 '긴급' 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한 원전전문가는 24시간씩이나 미적거리면서 언론사의 마감시간에 자료를 낸 것은 당초 사고를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전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았다' 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추된 국가이미지를 회복하기가 누출된 방사능 중수를 되담기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한전 관계자들은 알기나 할까.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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