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하땅세] 살벌하고 얼얼하고 … 살아 있는 연극, 살아 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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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땅세’는 지적 유희와 긴박감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극단 하땅세 제공]


“배우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관객을 향해 웃는 사람이다.”

 연극 초반에 나오는 대사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불 타 죽는, 그 긴박한 순간에서도 관객을 생각하다니 얼마나 프로페셔널한가. 그런데 연출가가 정말로 이걸 요구한다면? 꾸며진 가공이 아닌, 진짜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넣고 거기서 생생한 연기를 하라고 내던진다면?

 극단 이름이자 연극 제목이기도 한 ‘하땅세’는 지독하다. 임산부와 노약자는 피하는 게 좋을 듯싶다. ‘하땅세’란 ‘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의 약자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이기붕이란 연극 연출가가 있다. 천재 느낌이 나지만 엄청 괴팍하다. 규격화된 연기를 거부하고 폴란드의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를 들먹이며 펄떡거리는 생연기를 추구한다. 이때 무명의 여성 극작가가 등장한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며 연출을 부탁한다. 오디션을 하고 배우를 뽑아 연습에 들어간다. 근데 장난이 아니다. 연극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가면의 연극이 아닌, 삶이 묻어나길 원한다. 뺨을 후려 치고는 배우가 화를 막 내면 “거봐, 내가 원한 게 이런 살아있는 감정이야. 이게 진짜 연기라고”하는 식이다. 상황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자극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막바지,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연극은 빠르다. 군더더기 없이 관객을 빨아들인다. 거기에 연기, 혹은 연극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사는 은근히 ‘먹물’ 냄새를 풍긴다. 그뿐 인가. 극중 연출가의 거침없는 카리스마는, 왜곡된 독재 정치의 암울함과 겹쳐진다. 재미와 의미, 인문학과 사회성을 골고루 담아냈다면 썩 괜찮은 상차림 아니겠는가.

 막판 반전이 있다. 관객까지 극 안으로 내몬다. 잠시나마 오싹하며 살벌하다. 누군가는 불쾌하다고 할지 모른다. 정작 연출가 윤시중씨는 “배우들의 시선과 동선을 관객에게 가지 않도록 해, 최대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며 시치미를 뚝 뗀다. 그 말 100% 믿어도 될까. 조명이 켜지면 관객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얼얼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 나온다. 새삼 살아 있는 연극이 얼마나 짜릿한지 체감케 해주는 수작이다.

최민우 기자

연극 ‘하땅세’=12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스튜디오 76. 1만5000원, 2만원. 02-6406-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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