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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통에 버려진 개·가축도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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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8일 연평도 소방지역대 뒤뜰에서 큰 개에 물려 신음하는 생후 2개월 된 얼룩무늬 강아지(왼쪽)를 다른 개가 애처로운 듯 지켜보고 있다. 다친 강아지는 수술장비가 없어 안락사 처리됐다. [연평도=뉴시스]


28일 오후 2시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잡종으로 보이는 개들이 2~3마리씩 떼를 지어 먹이를 찾기 위해 몰려 다니고 있었다. 2m 정도 길이의 목줄을 끌고 다니는 개들도 눈에 띄었다. 몸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이들은 주민·취재진을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면 쫓아와 밥을 달라고 낑낑거렸다. 고양이들도 집 밖으로 나와 주민들이 말리던 생선, 까다 만 굴 등을 주워먹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주민들이 뭍으로 떠난 뒤 이들이 키우던 애완 동물, 가축 등은 현장에 방치돼 있다. 일부는 피격 때 다쳐 고통받고 있고, 대부분의 짐승은 먹이가 없어 굶주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평도에 남은 아이(동물)들이 보호받게 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카라는 “일부 주민은 반려 동물과 대피했지만 대부분의 개나 고양이 그리고 기타 동물들은 폐허가 된 전쟁터에 고스란히 남겨졌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담당 부서에 공문을 보냈지만 관할 부서가 없다거나 동물의 생명권은 2차적인 문제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카라는 ▶연평도에 남겨진 동물의 종류와 숫자를 파악할 것 ▶주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해당 동물을 이송해 줄 것 ▶음식·물·은신처 등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3일째인 28일까지 약 1만3000명이 서명했다. 네티즌들은 “생명이 있는 동물을 저렇게 버려서는 안 된다(아이디 ‘ek***’)” “저 눈을 보라. 동물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아이디 ‘atp0****’)”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에는 일부 동물보호단체가 현황 파악과 구조 작업을 위해 연평도에 도착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는 119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5마리의 부상견을 한데 모았다. 박 대표는 “주민들에 따르면 연평도에 남겨진 동물은 200~300마리”라며 “아직까지 직접 피격으로 부상 당한 동물은 성당에서 키우던 백구 1마리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친 백구는 치료를 받지 못해 부상 부위의 살이 썩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음식 부족 등 위기 상황을 본능적으로 느낀 개들이 서열 다툼을 벌여 어리고 힘 없는 개를 공격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날 오후 대형견 4마리에게 물려 창자가 터진 생후 2개월짜리 발바리를 안락사시켰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동물자유연대 전경옥 국장 등 3명도 현황 파악에 나섰다. 29일엔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구호팀을 꾸려 추가로 연평도에 들어올 예정이다. 수의사협의회와 옹진군청 관계자도 연평도에 들어와 동물들의 건강 상태와 처리 방법을 함께 논의키로 했다.

 연평도=유길용 기자, 서울=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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